미국 중앙은행(Fed)의 주요 인사들이 잇따라 테이퍼링(자산 매입 축소) 속도를 높여야 한다고 주장했다. Fed 내 2인자도 테이퍼링 속도를 올릴 필요성을 인정하며 정책 변화를 주문하는 대열에 가담했다. 그동안 지역 연방은행 총재를 중심으로 나오던 인플레이션 조기 대응론이 Fed 이사진으로 확산하는 분위기다.

"테이퍼링 가속…금리 올려야" Fed 내 '매파 목소리' 커진다
20일(현지시간) 블룸버그통신에 따르면 전날 리처드 클래리다 Fed 부의장은 샌프란시스코연방은행 주최로 열린 콘퍼런스에서 “다음달 연방공개시장위원회(FOMC) 회의에서 테이퍼링 속도를 올리는 것에 대해 논의하는 게 적절할 수 있다”고 말했다.

Fed는 지난 3일 FOMC 정례회의에서 테이퍼링 시작을 알리며 11월과 12월 Fed의 채권 매입 규모를 월 150억달러씩 줄이겠다고 발표했다. 이 속도를 유지하면 내년 6월에 테이퍼링이 끝난다. Fed는 지난해 6월부터 매달 미 국채 800억달러, 주택저당채권(MBS) 400억달러씩 매입해 시장에 유동성을 공급해왔다.

하지만 10월 소비자물가지수(CPI)가 1년 전보다 6.2% 급등하는 등 인플레이션 우려가 커지면서 Fed가 테이퍼링을 서둘러야 한다는 목소리가 힘을 얻고 있다. 클래리다 부의장은 “미 경제는 매우 강한 위치에 있고, 인플레이션 위험이 있다”며 “지금부터 12월 회의 사이에 경제 데이터를 자세히 살펴봐야 한다”고 했다.

Fed 내 2인자로 꼽히는 클래리다 부의장의 임기는 내년 1월 끝난다. 시장에선 임기 만료를 앞둔 클래리다 부의장이 본인의 의중을 가감 없이 표현한 것으로 해석했다. 당일 이 발언이 전해지자 하락하던 2년 만기 미 국채 금리는 반등하고 S&P500지수는 하락 전환하기도 했다.

같은 날 크리스토퍼 월러 Fed 이사는 한 발 더 나갔다. 테이퍼링 속도 증가뿐 아니라 기준금리를 인상해야 한다고 했다. 그는 뉴욕에서 열린 행사에서 “노동시장의 빠른 개선과 인플레이션 지표 악화로 내년에는 더 빠른 테이퍼링과 통화 완화 정책의 신속한 철회 쪽으로 기울고 있다”고 말했다. 월러 이사는 “내년 1분기까지 테이퍼링을 끝내는 것을 선호한다”며 “Fed가 올바른 선택을 하면 2분기 초에 기준금리를 인상할 수 있을 것”이라고 전망했다.

앞서 지난 8일 제임스 불러드 세인트루이스연방은행 총재도 조기 금리 인상을 주문했다. 내년 FOMC 멤버로 참여하는 불러드 총재는 폭스비즈니스와의 인터뷰에서 “2차 세계대전 이후 가장 뜨거운 노동시장과 공급 병목 현상으로 높은 인플레이션이 내년 말까지 지속될 것”이라며 “내년 6월까지 진행될 테이퍼링을 앞당겨야 한다”고 강조했다.

하지만 Fed 내에선 완화적 통화정책의 급격한 전환을 경계하는 신중론이 만만치 않다. 지난 15일 토머스 바킨 리치먼드연방은행 총재는 “Fed는 더 인내할 수 있다”며 “몇 달 더 상황을 지켜본 뒤 평가해야 한다”고 했다. 닐 카시카리 미니애폴리스연방은행 총재도 “일시적일 것으로 보이는 요인에 과민 반응해선 안 된다”고 말했다.

시장에서는 차기 Fed 의장이 누가 되느냐에 따라 통화정책의 향방이 결정될 것으로 보고 있다. 조 바이든 미 대통령은 이번주 제롬 파월 의장과 레이엘 브레이너드 Fed 이사 중 한 명을 차기 Fed 의장으로 임명할 예정이다. 내년 1월까지 부의장 2명과 공석인 Fed 이사까지 교체하면 7명의 Fed 이사진 중 최대 4명이 바뀐다.

워싱턴=정인설 특파원 surisuri@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