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독] 카드·캐피탈사 오토리스도 22% 이상 친환경車로…'고객 수요’까지 규제 받으라는 산업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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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준범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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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환경차 구매 규제에 신한카드·KB캐피탈 등 8개 금융회사 포함
오토리스 사업 위해 렌터카 등록했다는 이유로 규제
對고객 임대용 승용차에도 구매 할당 적용
“업계 현실 모르는 황당한 규제”

정부세종청사 13동에 있는 산업통상자원부 건물. / 연합뉴스

정부가 전기차·수소차 등의 전기·수소차 확산 속도를 끌어올리기 위해 추진하는 친환경차 연간 구매 목표 규제 대상에 카드·캐피탈사가 포함된 것으로 알려져 논란이 일어나고 있다. 카드·캐피탈사가 장기 리스 형태로 임대 서비스를 제공하는 자동차에도 친환경차 의무 보유 규제가 적용되는 것이다.

규제 대상에 포함된 금융사들은 비용 부담은 물론 고객 유치에도 난항을 겪을 가능성이 크다고 아우성친다. 이들 금융사의 리스 서비스는 고객이 원하는 차량을 금융사가 구매해 제공하는 방식이기 때문이다. 대다수 고객이 친환경차를 선호하고 또 친환경차 공급이 원활하면 문제 될 것이 없는데, 아직은 내연기관차 수요가 더 많고 친환경차 확보도 쉽지 않다는 게 충돌 지점이다. 회사 업무용 차량을 일정 비중 이상 친환경차로 채우라는 규제를 고객에게 리스비 받고 임대하는 차량에도 적용하라고 밀어붙이는 것은 과도한 규제라는 비판이 나온다.

정부가 친환경차 구매 비중을 일방적으로 고정해버리면 자칫 금융사가 승용차 장기 리스 고객의 수요를 모두 해결하지 못하고, 궁극적으로는 서비스 품질 하락으로 이어질 수 있다는 지적도 있다. 자동차 금융은 금융 회사들이 미래 먹거리로 사활을 걸고 있는 영역이다.

문재인 대통령이 지난 5월 28일 청와대 여민관 앞에서 수소차를 둘러보고 있다. / 청와대

오토리스 주 고객은 공급 느린 친환경차 안 기다려

5일 산업통상자원부에 따르면 정부는 민간 기업이 내년부터 업무용 차량을 살 때 구매 물량의 6%에서 최대 22%를 친환경차로 채워야 한다는 내용의 ‘환경친화적 자동차의 연간 구매 목표 제정안’을 최근 마련했다. 자산 5조원 이상 공시대상기업집단의 계열사 2612곳과 렌터카·택시·버스·화물차 사업을 하는 117개 기업이 규제 대상에 포함됐다. 규제 대상 업체들은 내년에만 420억원이 넘는 비용 부담을 떠안게 됐다.

가장 다급해진 건 렌터카 업체들이다. 이번에 정부는 전체 렌터카 기업 1412개 중 딱 8개 업체만 규제 대상에 포함했다. 정부가 제시한 ‘차량 보유 대수 3만 대 이상’ 조건에 부합하는 자동차 대여 사업자가 8곳에 불과했기 때문이다. 이 조건에 해당하는 렌터카 업체는 대부분 신한카드·KB캐피탈 등 오토리스 사업을 영위하는 금융회사다. 산업부에 따르면 이들 금융사는 장기 오토리스에 투입할 차량을 구매할 때 ‘친환경차 비중 22%’ 조건을 지켜야 한다.

문제는 오토리스의 영업 방식이다. 1년 미만 단기 렌터카의 경우 업체가 차량을 미리 확보하면 사용자는 그 물량 안에서 자신이 이용할 차를 고른다. 하지만 장기 오토리스는 고객이 먼저 원하는 차량을 지목하면 업체가 해당 차량을 구매해 고객에게 전달하는 방식이다. 고객이 임대해서 사용할 승용차를 금융회사가 구매한다는 이유만으로 산업부가 추진하는 친환경차 의무 구매 규제 대상에 포함된 것이다.

이에 대해 산업부 관계자는 “해당 사업자들(오토리스 업체)도 일반 렌터카 회사와 마찬가지로 차량 대여 사업자로 등록돼 있기 때문에 (규제 대상에 넣는) 절차상 오류가 있었던 건 아니다”라며 “규제 마련 과정에서 모든 대상 업체로부터 의견을 접수했는데, 그때도 (오토리스 기업들은) 별 의견을 내지 않았다”고 했다.

그러나 업계에서는 내연기관차 선호도가 높은 고객 수요를 고려할 때 이번에 도입되는 규제는 비현실적이라고 비판한다. 오토리스 서비스를 제공하는 금융회사는 친환경차 구매 목표치를 채우지 못할 것이라고 반발하고 있다.

국내 한 캐피탈 기업 관계자는 “최근 들어 전기차나 수소차를 찾는 사람이 부쩍 많아진 건 사실이지만, 장기 렌터카를 찾는 고객이 주로 법인이라는 점을 기억해야 한다”며 “법인은 만성 공급 부족에 시달리는 친환경차보다 빨리 받을 수 있는 내연기관차나 싸게 탈 수 있는 LPG(액화석유가스)차를 선호한다”고 했다.

자동차 리스 지원 계약 구조. / 한국소비자원

車에서 살길 찾는 금융사…“연착륙 기회 줘야”

캐피탈·카드사 중심인 규제 대상 8개 렌터카 사업자가 현재 보유 중인 차량은 총 67만4213대다. 산업부는 차량 교체 주기 8년을 적용할 경우 렌터카 사업자의 연간 신차 수요는 8만4277대고, 친환경차 구매 목표치를 채우려면 이들이 내년에 6071대를 새로 사야 한다고 했다. 현재 차량용 반도체 부족 장기화로 전기차는 물론 내연기관차 생산도 큰 차질을 빚고 있다는 점을 고려할 때 장기 렌터카 업체가 내년에 정부 눈높이를 맞출 가능성은 희박하다는 게 업계 입장이다. 산업부 관계자는 “규제 시행 초반부터 페널티 등의 강한 제재를 가하지는 않을 것”이라며 “기업과 소통하면서 제도를 다듬어 나가겠다”고 했다.

오토 리스를 비롯한 자동차 금융은 수익성 개선이 절실한 카드사와 캐피탈사가 미래 성장동력으로 점찍은 먹거리 중 하나다. 카드사의 경우 가맹점 수수료 인하로 수익원이 급감하자 부랴부랴 자동차 금융으로 영토 확장에 나섰다. 금융사들은 직접 몸집을 불려 자동차 금융 부문을 키우는가 하면, 다른 업체와 연계해 힘을 쌓기도 한다.

최근 사례로는 지난해 12월 아주캐피탈(현 우리금융캐피탈)을 인수한 우리금융이 공격적으로 자본을 투입하며 통합 자동차 금융 플랫폼을 구축해가고 있다. 삼성카드는 이달 2일 SK렌터카와 전략적 업무 제휴 협약을 체결했는데, 두 회사가 선보이는 ‘SK렌터카 삼성카드’는 새 차 장기 렌트 계약 시 납부하는 보증금을 24개월 또는 36개월 할부로 이용할 수 있는 상품이다. 전월 카드 이용금액에 따라 렌터카 이용료를 추가로 할인해준다.

금융업계 한 고위 관계자는 “경제·사회·문화 등 거의 모든 분야의 글로벌 트렌드가 ‘친환경’으로 빠르게 이동하고 있는 걸 금융 회사들도 잘 안다”며 “다만 산업마다 특성이 다르고 새 환경에 적응하는 속도도 다르기 때문에 정부가 연착륙할 수 있도록 도와줘야 하는데, 지금 돌아가는 상황을 보면 청와대의 탄소중립 구호에 성급하게 끌려간다는 인상을 지울 수 없다”고 토로했다.

이 관계자는 “금융사들은 아등바등 살길을 찾는데, 정부가 일방적으로 규제를 강요하면 가뜩이나 치열한 장기 렌터카 시장에서 서비스 경쟁력을 잃고 도태될 수 있다”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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