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U가 中·日보다 韓 조선업 재편 견제?…선주들 "선박 가격 올라 부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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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내 조선업계가 경쟁국인 중국·일본보다 까다롭게 보는 상대는 ‘유럽’입니다. 한국 조선업이 재편되면 선박 가격 인상이 불가피한 상황인데, 유럽에 있는 선주들이 달가워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현대중공업이 지난달 31일 임시주주총회에서 ‘물적분할(법인분할)’ 안건을 통과시켰다. 중간지주회사인 한국조선해양의 설립이 가능해지면서 대우조선해양 인수의 첫 관문을 통과했다. 남은 관문은 한국 공정거래위원회를 포함해 유럽, 미국 등 세계 주요 국가의 ‘기업결합’ 심사다. 각국 당국은 두 회사의 결합으로 경쟁이 얼마나 제한될 것인지, 우월적인 시장 지위를 남용할 것인지 여부를 가릴 전망이다.

현대중공업 울산조선소(위)와 대우조선해양 거제 옥포조선소에 설치된 골리앗 크레인의 모습(아래)./조선일보DB

기업결합 심사에 가장 걸림돌이 될 것으로 예상되는 곳은 바로 유럽이다. 국내 조선업계의 고객사인 선주사 대부분이 유럽에 밀집돼 있다. 선주들은 현대중공업, 대우조선해양, 삼성중공업 등 국내 3개 업체가 치열하게 가격 경쟁을 벌이면 싼 값에 품질 좋은 배를 사갈 수 있었다. 하지만 세계 1·2위 업체인 현대중공업과 대우조선해양이 합병하면 선주사의 가격 협상력이 약해져 선박 가격 인상이 불가피할 것으로 보인다. 선주가 두 회사의 결합을 반기지 않는 이유다.

조선업계 고위 관계자는 "한국 조선업 재편으로 가장 부정적인 영향을 받는 곳은 선주들이 몰려있는 유럽 국가"라며 "시장 지배력을 놓지 않기 위해 결합심사에 영향을 미칠 것으로 예상된다"고 말했다.

유럽 경쟁당국은 이미 현대중공업·대우조선해양 합병에 대한 불편한 기색을 숨기지 않았다. 안드레아스 문트 독일 연방카르텔청장(한국 공정거래위원장에 해당)은 올 3월 독일 베를린에서 한국 기자들과 만나 "M&A가 도산을 막을 수 있는지 검토하겠지만 그보다 더 엄격한 기준을 정하고 있다"며 "우선적인 기준은 경쟁 제한성 여부"라고 말했다. 문트 청장은 또 "시장경제 관점에서 보면 M&A가 기업의 위기 상황을 극복하는 해결책은 아니다"며 "M&A를 통해 (기업이) 침체 상황에서 회생을 꾀하는 것은 맞지 않는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유럽연합(EU) 집행위원회 경쟁총국도 문트 청장과 비슷한 입장을 밝혔다. EU 경쟁총국 고위 관계자는 올 3월 벨기에 브뤼셀에서 한국 기자들과 만나 "우리가 중점적으로 보는 것은 M&A가 소비자에게 어떤 영향을 주는가"라며 "M&A를 승인했을 때와 불허했을 때 상황을 가정해 판단한다"고 말했다.

유럽 경쟁당국이 눈여겨 보는 이슈는 ‘독과점’ 여부다. 시장분석기관 클락슨리서치 집계에 따르면 수주잔량 글로벌 1위는 1만1145CGT를 보유한 현대중공업그룹이다. 2위는 대우조선해양으로 5844CGT다. 두 회사의 수주잔량을 합치면 1만6989CGT로 전 세계 조선시장의 21.2%를 차지한다. 국내 시장점유율은 80%에 육박할 전망이다. 국내 조선업계가 강점을 가진 액화천연가스(LNG) 운반선은 양사의 점유율을 합치면 60%대에 이른다.

최근 결합심사 사례를 볼 때 1개국에서만 반대해도 인수합병(M&A)이 무산될 가능성이 있다. 지난해 8월 미국 반도체설계회사 퀄컴은 네덜란드 NXP반도체를 440억달러(약 50조원)에 인수하는 계획을 포기해야만 했다. 유럽연합(EU), 한국 등 9개 대상국 중 8개국에서 승인을 얻었지만, 중국 정부가 반대한 것이다.

일각에서는 중국, 일본 등 경쟁국의 견제·반발은 예상보다 심하지는 않을 것이라는 분석이 나온다. 중국 정부는 양대 국영조선그룹인 CSSC와 CSIC의 합병 작업에 속도를 내고 있다. 자국 조선업 재편 작업을 추진하는 상황에서 한국 조선업의 재편을 거부할 명분이 약하다는 것이다. 블룸버그에 따르면, 합병으로 탄생할 중국 업체의 연 매출은 현대중공업·대우조선해양·삼성중공업을 합친 것보다 2배 이상이 될 것으로 추산된다.

양종서 수출입은행 연구위원은 "중국도 한국과 마찬가지로 빅2 업체의 합병이 진행중이기 때문에 어깃장을 놓긴 쉽지 않은 상황"이라며 "일본의 경우, 거부를 해도 한국 업체들에게 의미 있는 시장이 아니라 별다른 타격은 없다"고 말했다.

[한동희 기자 dwise@chosunbiz.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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