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대유행으로 지난해 전 세계 와인 소비량이 19년 만에 최저치를 기록했는데요. 국제와인기구(OIV)는 코로나19로 호텔과 관광업계가 큰 타격을 입으며 와인 소비가 함께 급감한 것으로 분석했습니다. 반면, 우리나라 와인 소비량은 매해 최고치를 갱신하는 중인데요. 한 대형마트의 연간 와인 판매액이 1,000억 원을 돌파했고, 편의점에서 판매하는 와인을 찾는 소비자도 늘었다고 합니다.

전문가들은 코로나19의 영향으로 집에서 술을 즐기는 ‘홈술족’이 증가했기 때문으로 분석하는데요. 수도권 중심으로 강화된 사회적 거리두기 체계가 와인 업계 입장에서는 희소식이란 말도 들립니다. 그러나 와인 판매량 급증에 환경부의 고심이 나날이 깊어지고 있는데요. 다 마신 후 버려진 와인 공병의 처리 방법을 놓고 갈등을 빚고 있기 때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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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활용·재사용이 힘든 와인병의 사정 🍾

녹색이나 갈색 같은 짙은 색깔이 주를 이루는 와인병. 직사광선에 취약한 와인을 보호하기 위해 짙은 색상을 사용하는데요. 여기에 병의 모양은 지역 혹은 와인 품종별로 다르다고 합니다. 각국의 와인 산지에서 생산된 와인의 스타일 혹은 생산자의 요구에 맞게 병 형태가 발전된 것이죠.

문제는 와인병 특유의 짙은 색깔, 제각기 다른 병 모양으로 인해 재활용이 어려운 것! 소주나 맥주병과 달리 해외에서 들어온 와인병은 재활용이 힘든데요. 이에 2019년 4월 환경부는 ‘포장재 재질·구조 개선 등에 관한 기준 개정안’에서 와인병에 재활용 용이성 등급 어려움 표시를 추진하려 했습니다. 그러나 당시 와인 업계의 거센 반발로 무산됐는데요. 와인병을 대체할 수 없다는 업계의 입장이 반영됐다고 합니다. 그 대신 와인 수입 생산 업체는 환경부담금을 20% 더 부담하게 됐는데요. 현재는 이 부담금을 가지고 와인병 폐기에 사용 중이라 합니다.

그렇다면 재사용은 어떨까요? 와인병은 최소 7번은 재사용이 가능한데요. 국내에서는 재사용이 쉽지 않은 실정입니다. 우리나라는 와인을 주로 수입하다 보니 와인병 수거를 담당하는 업체가 부재하고, 제각기 다른 색과 모양으로 인해 공통된 재사용 시스템을 만들기 어렵다고 합니다. 그래서 와인병 일부를 무드등이나 캔들 워머를 담는 통으로 업사이클링하는 것이 전부인 상황이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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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외도 사정이 크게 다르지 않아…🌍

우리나라는 소주병이나 맥주병 등에 한해 공병보조금 반환 제도를 시행 중인데요. 아쉽게도 와인병은 받지 않고 있습니다. 해외에서도 사정은 크게 다르지 않습니다. 독일의 경우 모든 마트에 공병 수거함이 의무적으로 설치돼 있는데요. 독일에서는 빈용기 반환 제도를 ‘판트(Pfand)’라 부릅니다. 이 제도는 2003년부터 시작됐는데, 유리 뿐만이 아니라 페트병과 캔도 적용이 된다고 하죠. 와인병을 포함한 모든 병은 색상에 따라 마트 내 수거함에 버릴 수 있는데요. 다만, 와인병은 해외에서 들여와 재활용·재사용이 어려워 보증금은 반환받을 수 없다고 합니다.

연방제를 채택한 미국은 ‘주’마다 제각기 다른 공병보조금 반환 제도를 시행 중인데요. 똑같은 와인병을 내면 캘리포니아·뉴욕·아이오와주 등에서는 보증금을 받을 수 있으나, 오리건주는 받을 수 없죠. 또한, 주 자체에 재활용 유리 공병 수거 업체의 유무에 따라 상황이 달라지는데요. 만약 거주지 인근에 수거 업체가 있으면, 지역 주민들이 버린 와인은 인근 업체가 수거한 후 24시간 이내로 재사용 혹은 소각 여부를 판단한다고 합니다. 그렇지만 수거 업체가 없는 경우가 더 많은데요. 이에 미국 환경보호청(EPA)은 공병 수집 업체가 인근에 소재하지 않은 지역 주민에게 와인병을 일반 쓰레기로 처분해주길 권한다고 합니다.

 

© 미국에서 진행 중인 와인병 재사용 프로젝트 Good Goods 홈페이지 갈무리

우리가 재사용 모델을 만들어본다! ♻️

와인병 문제가 불거지자, 이를 해결하기 위한 여러 대안이 속속 나오는 중인데요. 크게 와인병을 재사용하거나, 아예 병이 아닌 종이나 재활용 페트병에 와인을 담는 시도가 이어지고 있습니다.

미국의 ‘굿 굿즈(Good Goods)’‘고담 프로젝트(Gotham Project)’란 두 스타트업체는 와인병 재사용 프로젝트를 운영 중인데요. 먼저 굿 굿즈의 경우 소비자가 와인을 다 마시면, 아래 QR 코드를 스캔을 진행합니다. 그럼 전문 업체가 와인 공병을 수거하고 회사 측은 이를 깨끗하게 소독 후 와인을 리필해 판매하는 구조인데요. 회사 입장에서는 안정적으로 병을 공급받고, 참여한 고객은 다른 와인을 구매할 시 2달러를 할인 받을 수 있습니다. 현재는 뉴욕주에서만 시행 중이나, 올해 말까지 미국 전역으로 확대할 계획인데요. 굿 굿즈 CEO인 잭 롤리스는 “고객, 공급업체, 서비스 공급자 등 모두가 협력한 재사용 모델을 통해 탄소 배출을 줄이는 동시에 매출이 증가할 수 있다”며 순환경제의 이점을 강조했습니다.

고담 프로젝트는 식당과 술집을 대상으로 와인병 재사용 프로젝트를 운영 중입니다. 식당이나 술집에서 다 쓰고 버린 와인병을 수거해 세척하고 다시 판매하는 구조인데요. 뉴욕·뉴저지·매사추세츠·콜로라도주 내 소매업체를 대상으로 운영 중이며, 올해 9월에는 3개 주가 더 합류한다고 합니다. 두 회사 모두 세계 각지에서 와인을 ‘통’으로 수입해 와 리필이 가능한 것인데요. 레드·화이트·로제 와인 등 종류도 다양하고, 가격대가 10~12달러로 저렴한 편이라 소비자들이 열광하고 있다고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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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적인 와인 생산지인 프랑스에서도 와인병 재사용 프로젝트가 발족됐습니다. 2019년 셸리 쿠셰(Celie Couché)가 발족한 ‘부타부(Bout à Bout)’ 프로젝트가 대표적인데요. 셸리는 인근 생산업체, 유통업체, 상점 및 레스토랑, 병 세척 공장 등과 파트너십을 맺고 와인병을 세척해 리필 후 판매한다고 합니다. 현재 제각기 모양이 다른 7개의 와인병을 세척한다고 하는데요. 제로웨이스트(ZeroWaste) 상점부터 일반 슈퍼마켓에서 해당 제품을 찾을 수 있다고 합니다.

오스트리아 슈타이어마르크주에서는 2011년부터 와인병 수거 시스템을 운영 중인데요. 포도밭, 상점, 공병 수거 및 세척 업체들이 협력한다고. 다른 곳과 마찬가지로 와인병을 수거해 세척 후 와인을 리필해 판매하는데요. 이 프로젝트는 남유럽 와인 업체들에 영감을 주어 ‘리와인(reWINE)’ 프로젝트 운영에 큰 도움이 됐다고 합니다.

리와인 프로젝트는 2019년부터 스페인 카탈루냐 지역에서 시범 운영됐으며, 20개월의 시범 운영 동안 15만 병의 와인이 판매됐다고. 약 8만 2,239개의 와인병이 재사용됐다고 하는데요. 현재 수거 및 세척 절차를 더 확대해, 남유럽 전체로 확대할 계획이라고 합니다.

 

© 종이병에 담긴 와인 Frugalpac 홈페이지 갈무리

와인을 꼭 병에 담아야 하는 걸까? 🍷

주요 와인 생산지를 중심으로 와인병을 재사용하는 프로젝트가 하나둘 시행되고 있습니다. 그러나 와인병 재사용은 와인 생산자, 유통 업체, 병 수거 및 세척 업체, 소비자 등 모든 이의 협력이 필요한데요. 각각의 다양한 와인 업체들과의 협력이 필수인지라, 여러 난항이 존재한다고 합니다. 앞서 언급한 재사용 프로젝트에 들어간 와인 모두 비교적 저렴한 가격인데요. 고급 와인의 경우 브랜드 이미지 하락을 우려해 여전히 자신들만의 병을 고집하고 있다고 합니다.

물론 와인을 꼭 병에 담지 않아도 된다는 발상의 전환을 한 이들도 있습니다. 우리나라, 뉴질랜드, 미국 등지에서는 와인용기는 병에 담아야 한다는 공식을 깨고 플라스틱병이나 와인을 담아 판매하는 시도를 진행 중인데요. 용기가 가볍고, 코르크 따개가 필요 없으며, 분리수거가 용이하다는 장점 등이 있다고 합니다.

 

© Chelsea Pridham <a href=httpsunsplashcomphotosdbZupjFMbMI target= blank rel=noreferrer noopener>UNSPLASH<a>

물론 이 방법이 100% 지속가능하다고 할 수는 없는데요. 영국의 ‘더잉글리시바인(The English Vine)’이란 주류 회사는 에섹스 지방에서 생산된 다양한 와인을 병이 아닌 종이병에 담아 판매한다고 합니다. ‘프루걸팩(Prugalpac)’에서 생산한 종이병은 유리병보다 5배 가벼워, 유통 과정에서 탄소배출량을 84%나 줄일 수 있다는데요. 종이병 내부는 재활용 플라스틱 필름으로 코팅돼 와인을 안전하게 담을 수 있으며, 분리배출 또한 쉽다고 하죠. 영국 여론조사기관 서베이션(Survation)에서 1,700명을 대상으로 실시한 설문조사에 의하면, 응답자의 63%는 종이병에 담긴 와인을 구매할 의사가 있다고 답했는데요. 더잉글리시바인은 오는 2026년까지 자사의 모든 와인을 종이병과 같은 비유리병에 담아 판매한다고 합니다.

맛과 향이 중요한 와인을 담는 ‘병’은 오랫동안 이어져 왔죠. 그러나 지속가능성이 와인 업계에서도 화두로 떠오르며 와인병을 두고 여러 혁신적인 시도가 이어지고 있습니다. 아직은 와인 생산지를 중심으로 이뤄지고 있지만, 가까운 미래 새로운 종류의 와인병을 마트에서 볼 날이 곧 오지 않을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