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독]공공기관 ‘정규직 전환 자회사’ 계약자료 보니 “여전히 용역업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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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정2021.08.23. 오전 9: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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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 정부 들어 전환한 공공기관 자회사 34곳 지난 3년 계약설계 분석[경향신문]

ㆍ비용·단가 낮춘 경쟁입찰 관행에

ㆍ저임금에 식대 등 설계 부실 여전

ㆍ파견·용역 일, 자회사 이전일 뿐


2017년 5월12일 문재인 대통령이 인천국제공항공사에서 열린 ‘공공부문 비정규직 제로시대를 열겠습니다’ 행사에서 발언하고 있다. 청와대사진기자단

문재인 정부에서 공공기관들이 자회사 설립을 통해 청소·경비 등 용역업체의 비정규직 노동자들을 정규직으로 전환했지만, 기존 용역계약 관행을 답습하면서 노동자들의 처우 개선은 미흡하다는 연구 결과가 나왔다. 자회사가 ‘덩치만 큰 하청업체’가 되지 않고 노동자들의 실질적인 처우 개선으로 이어지려면 정부의 적극적인 감시와 제재가 필요하다는 지적이 제기된다.

22일 경향신문이 확보한 이수진 더불어민주당 의원(비례대표)과 민주당 전국노동위원회, 한국노총 전국공공산업노조연맹의 ‘공공기관 자회사 계약설계 개선방안 연구’ 보고서에는 이같은 내용이 담겼다. 연구를 수행한 노무법인 소속 연구진은 한국전력공사·인천국제공항공사 등 23개 공공기관이 출자해 설립한 34개 자회사의 2018~2020년 3년간 용역설계와 계약 관련 자료를 분석했다. 지난해 말 기준 정규직 전환된 공공부문 노동자(19만2698명) 중 자회사 방식은 25.8%(4만709명)다.

경쟁입찰 형태의 기존 용역계약 체제는 용역 노동자들의 처우를 열악하게 만드는 원인으로 지적돼왔다. 비용 절감과 단가 낮추기가 중심이 되기 때문이다. 그래서 정부는 정규직 전환 자회사가 모회사인 공공기관과 안정적으로 수의계약을 체결해 수익을 보장받고, 전문적 업무수행 조직으로써 경영·인사관리를 체계적으로 운영하도록 지침을 만들었다. 또 정규직 전환으로 인해 절감되는 일반관리비 등은 노동자 처우 개선에 활용하도록 했다.


연구진 분석 결과, 수의계약에는 낙찰률(예정가격 대비 낙찰가격의 비율) 적용규정이 없지만 분석 대상 공공기관·자회사들은 종전 경쟁입찰 계약에 따른 낙찰률을 적용하고 있었다. 평균 낙찰률이 2018년 94.0%, 2019년 91.8%, 지난해 92.7%로 90% 이상이었지만 4개사는 정부가 정한 최저 낙찰하한율(87.9%)보다도 낮은 낙찰률을 보였다. 낙찰률이 81.9%(2019년)로 80%를 겨우 넘긴 곳도 있었다.

자회사가 자체적으로 복리후생 정책을 수립할 수 있도록 적절한 관리비·이윤을 보장한다는 정부 방침 관련해서는 자회사별로 차이가 컸다. 국가계약법상 규정된 예정가격(계약금액) 대비 일반관리비 최대 비율 9%를 보장받은 곳은 지난해 12개사였다. 3개년 평균 6~7%대였고, 3개사는 일반관리비 비율이 3%에도 미치지 못했다. 이윤 최대 비율 10%가 적용된 자회사는 지난해 12개사였다. 평균은 5~7%였는데, 0%인 자회사도 있었다. 예정가격 산정 시 노임단가 등에 원가계산 가격의 100%를 적용해 노동자에게 사업 수행에 적합한 대가를 지급하고 처우 개선을 유도한다는 정부 방침은 제대로 지켜지지 않았다. 2018년 3개사, 2019년 12개사, 지난해 16개사가 준수하지 않은 것으로 집계됐다.

용역설계의 세부 항목을 살펴보면, 자회사들은 최저임금이 아닌 시중 노임단가를 적용하고는 있었다. 하지만 상여금·식대·교통비 반영 여부는 기관별로 달랐다. 지난해 기준 7개사가 상여금을 지급하지 않았지만, 3개사는 400%의 상여금을 설정하고 있었다. 식대는 6개사가 지급하지 않았는데, 식대를 지급하는 경우에도 월 7만원부터 13만원까지 금액 차이가 컸다. 교통비는 9개사가 지급하지 않고 있었고, 지급하는 때는 월 5만~12만원 수준으로 설계돼있었다. 명절상여금·복지포인트 등 복지성 급여는 대체로 설계에 반영돼있지 않았다.

19개사의 지난해 계약서와 과업지시서에는 경영·인사권 침해 소지가 있는 문구도 명시돼 있었다. 모기관이 자회사의 직원 교체를 요구하거나 교체인력 채용 제한, 채용 시 인사기록정보 제출, 인력증원 시 사전 승인 등 인사상 독립성을 침해하는 내용이다. 또 10개사의 과업지시서에서는 누락된 과업 수행 시 추가비용을 청구할 수 없다거나, 과업내용의 해석상 이견이 있을 경우 모기관 해석에 따른다는 내용이 발견됐다. 쟁의행위로 인한 업무 공백 시 채무 불이행에 대한 손해배상 책임(3개사), 소란행동·직원 품행 등 이유로 계약 해지(3개사) 등의 내용도 계약서 등에 들어있었다.

계급사회 관련 일러스트. 김상민 기자

이같은 상황임에도 노동조건이나 작업환경, 복지 등을 협의하는 기구인 모기관·자회사 노사공동협의회는 절반 이하인 15개사(지난해 기준)에만 설치돼 있었다. 자회사 노동자의 복리후생 증진을 위해 모기관 사내복지기금을 활용하는 방안은 지난해 6개사만 시행 중이었다. 연구진은 “공공기관의 자회사에 대한 계약내용은 기존의 용역계약 관행과 방식에서 크게 달라졌다고 보기 어렵다”며 “파견·용역으로 이뤄지던 업무를 단지 외부 용역업체에서 자회사로 이전했을 뿐, 계약 내용을 달리해야 할 유인이 없었기 때문”이라고 지적했다.

이수진 의원은 “정부 차원에서 모기관 용역 설계 및 계약 실태에 대한 모니터링을 통해 관행에 대한 점검을 강화하고, 공공기관 경영평가에 정부권고안 이행 여부를 계량평가 항목으로 넣어 지표를 개선해야 한다”고 밝혔다. 박해철 전국공공산업노조연맹 위원장은 “모·자회사 간 계약 갱신 시 정부권고안이 이행되고 있는지를 공공기관 경영공시를 통해 공개하고, 정부 지침을 준수하지 않고 있는 모기관 기관장에 대한 경고조치 등 강력한 제재가 필요하다”고 했다.

고용노동부 관계자는 “공공기관이 (바람직한 자회사 모델안을) 적극적으로 이행할 수 있도록 매년 자회사 평가를 해 기획재정부의 경영평가에 반영하기로 했다”며 “전문가를 파견해 컨설팅도 제공하고 있다”고 했다. 이어 “근로자들의 처우가 개선되려면 (모기관·자회사간) 계약이 중요하고 관련해 평가에서 강화할 필요가 있지 않느냐는 현장 의견을 알고 있다”며 “노동계 의견을 수렴해 평가 지표를 개선하는 연구를 하고 있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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