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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동보다 중국이 더 밉다…'악' 소리나는 석유화학업계 시름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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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5면

중국발 공급 과잉 여파에 국내 석유화학업계가 침체의 늪에서 좀체 헤어 나오지 못하고 있다. 지난 10여 년간 중국이 관련 설비를 대폭 증설하며 값싼 제품을 쏟아낸 여파가 크다.

30일 LG화학은 지난 1분기(연결기준) 매출 11조6094억원, 영업이익 2646억원을 기록했다고 공시했다. 지난해 같은 기간 대비 매출은 18.7%, 영업이익은 67.1% 감소했다. 석유화학 부문에서만 312억원의 영업손실이 발생했다. LG화학은 “지정학적 리스크에 따른 원료가 상승 압박이 컸지만, 나프타 래깅(원재료 투입 시차) 효과와 비용 절감을 지속해 전 분기 대비 적자 폭이 줄었다”고 밝혔다.

이달 1분기 실적을 공시할 롯데케미칼도 성적이 좋지 못할 전망이다. 증권업계에선 1분기 매출 5조588억원, 영업손실 1171억원을 예상한다. 이 전망대로라면 지난해 같은 기간 대비 매출은 2.6% 증가하지만, 1000억원이 넘는 적자가 발생한다.

앞서 29일 1분기 실적을 공시한 SK이노베이션은 국제 유가 상승에 따른 재고평가이익이 반영되고, 정제마진(원유와 원유로 만든 제품 간 가격 차이)에 힘입어 흑자를 기록했다. 그러나 배터리 사업의 부진은 이어졌다. SK이노베이션의 1분기 매출은 18조8551억원, 영업이익은 6247억원으로, 지난해 같은 기간보다 매출은 1.5% 감소했지만 영업이익은 66.6% 늘었다. 배터리 자회사인 SK온은 매출 1조6836억원, 영업손실 3315억원으로 적자를 벗어나지 못했다.

울산 남구에 조성된 석유화학단지 전경. 뉴스1

울산 남구에 조성된 석유화학단지 전경. 뉴스1

석유화학은 석유를 가공할 때 발생하는 물질인 나프타 등을 이용해 플라스틱 같은 합성 원료를 만드는 산업이다. 대개 유가가 치솟으면 수익성이 떨어져 실적 부진에 시달리지만, 이번 위기는 중국 영향이 크다. 중국은 2010년 들어 석유화학 자급화를 선언하고 범용 다운스트림 제품 증설에 나섰고 중간원료(PX)‧기초유분 증설도 진행하고 있다. 값싼 석유화학제품을 자국에 공급하고 남은 물량은 동남아시아 등지에 팔고 있다.

한국 입장에선 수요가 확 줄어든 셈이다. 한국은 중국에 2019년 1801만t의 석유화학제품을 수출했지만, 지난해 1470만t으로 감소했다. 4년 만에 수출량이 18.4%가량 줄었다. 생산량도 줄고 있다. 석유화학업계에 따르면 국내 석유화학업체의 지난해 나프타분해설비(NCC) 평균 가동률은 70% 선이다. 2년 만에 가동률이 20%포인트 떨어졌다. LG화학은 지난해 여수 NCC 2공장 가동을 6개월간 중단했다.

단가는 낮아지고 있다. 산업통상자원부에 따르면 나프타 평균 가격(지난달 말 기준)은 톤(t)당 717달러다. NCC에서 나프타를 통해 생산하는 기초원료인 에틸렌 가격은 t당 900달러 수준이다. 석유화학업계에선 업황을 드러내는 기본 지표로 꼽는 에틸렌 스프레드(에틸렌 가격-나프타 가격)가 300달러를 넘어야 손익 분기점을 넘는다고 보는데 현재 180달러 수준에 불과하다.

업체들도 위기에서 벗어나기 위해 고심하고 있다. 우선 인력 조정에 나섰다. LG화학은 생산기술직을 대상으로 희망퇴직을 진행하고 있다. 롯데케미칼은 플라스틱 원료인 페트를 생산하는 울산공장 직원들을 재배치하는 방안을 검토하고 있다. 지난해 중국 범용 석유화학제품을 생산하는 롯데삼강케미칼, 롯데케미칼자싱을 중국 파트너사에 매각했다.

김영희 디자이너

김영희 디자이너

중국이 만들기 어려운 고부가 제품으로 무게 중심을 옮기고 있다. LG화학은 태양광 필름용 소재인 폴리올레핀엘라스토머(POE) 증설을 통해 시장 확대를 꾀하고 있다. POE는 고부가 합성수지로, LG화학이 자체 개발한 고유의 촉매(메탈로센)를 사용해 고무와 플라스틱 성질을 모두 지닌 POE를 생산한다. 신학철 LG화학 부회장(대표이사)은 연초 신년사를 통해 “고성장·고수익 중심의 지속가능한 포트폴리오로 전환, 모든 사업의 고부가화를 추진하고 저수익 사업의 수익성을 개선하자”고 당부했다.

롯데케미칼도 현재 50% 수준인 고부가 제품 비중을 2032년까지 60%로 확대할 방침이다. 석유‧석탄 같은 화석연료를 대체할 수 있는 청정 수소에도 눈을 돌리고 있다. 오는 2030년까지 총 6조원을 투자해 120만t 규모의 청정 수소를 생산하고, 연 매출 5조원을 달성하겠다는 계획이다. 지난해 초 한국과학기술원(KAIST)과 탄소중립연구센터를 설립하고 올해 말까지 연구비 20억원을 투자하기로 했다. 폐플라스틱 열분해‧수전해를 통한 청정 수소 생산과 단가 최적화, 탄소배출량 저감 기술 개발에 집중하고 있다. SK이노베이션도 SK온의 글로벌 생산설비 증설 시점을 탄력적으로 운영, 속도 조절에 나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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