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독] "첫 출산은? 모유 수유는?" 지자체는 여성건강에 '출산'만 물었다

입력
수정2021.10.19. 오후 2:33
기사원문
본문 요약봇
성별
말하기 속도

이동 통신망을 이용하여 음성을 재생하면 별도의 데이터 통화료가 부과될 수 있습니다.

전국 지자체 지역사회 건강실태조사
'여성건강' 부문 출산·모유 수유 항목만
"시대착오적…월경장애 등 다양화 필요"
지난 8월 서울 시내 한 산부인과 앞을 시민이 지나가고 있다. 뉴스1


2016년 우리나라에선 때아닌 '출산지도 논란'이 터졌다. 당시 행정자치부가 지자체별 가임기 여성 숫자를 지도 위에 표시하는 서비스를 공개했다가 "여성을 애 낳는 기계 취급하냐"라는 비판이 들끓었다. 서비스는 곧바로 폐쇄됐다.

그 후로 5년 가까운 시간이 흘렀지만, 여전히 여성의 몸을 출산도구쯤으로 보는 인식은 크게 개선되지 않은 모습이다. 질병관리청이 주관하고 전국 지자체가 국민건강을 파악하겠다며 진행하는 실태조사에서 여성의 건강을 묻는 지표는 아직도 '출산' 영역에만 국한돼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2016년 말 행정자치부가 홈페이지에 공개한 '대한민국 출산지도'. 한국일보 자료사진


출산·모유 수유 묻고 끝…조사도 중구난방



18일 국회 여성가족위원회 소속 권인숙 더불어민주당 의원실이 질병청으로부터 제출받은 자료에 따르면, 매년 진행하는 '지역사회 건강실태조사' 중 '여성건강' 부문 지표는 ①출산경험률 ②최초 출산연령 ③최근 출산경험률 ④모유 수유 경험률 4가지로 구성된 것으로 나타났다. 그나마 평생 출산한 경험이 있는지, 첫 출산 나이는 몇 살인지만 조사하다가 2019년 최근 출산 여부와 모유 수유 경험이 추가된 결과다. 모두 '모성건강' 범주에만 머물러 있다.



지역사회 건강실태조사는 국민건강을 파악할 수 있도록 모집단을 추출하고 면접 조사로 진행하는 국가승인통계다. 전국 255개 지자체가 흡연, 음주 등 생활습관부터 신체활동, 정신건강, 각종 이환(罹患) 등 부문별 지표를 조사해 건강 수준과 각 지역에서 갖는 의미를 분석하는 유일한 지표다. 이 데이터가 기반이 돼 각 지자체는 지역보건의료계획 등을 수립하게 된다.

이런 핵심 기초 자료에서 여성건강을 살피겠다며 만든 지표가 출산과 모유 수유만 묻고 끝나는 셈이다.

출산과 모유 수유 경험률도 물론 중요한 건강지표다. 하지만 이마저도 실제 조사 여부는 지자체별로 제각각이다. 부문별 지표는 무조건 조사해야 하는 '필수지표'와 지자체가 하고 싶으면 하는 '선택지표'로 나뉘는데 여성건강은 선택지표다. 이 때문에 2018년엔 울산만 여성건강을 조사했고, 2019년엔 서울, 부산, 울산, 강원, 충북 4곳에 그쳤다. 4개 지역도 4가지 항목 모두 조사한 건 서울이 유일하다. 작년과 올해는 코로나19를 이유로 아예 건너뛰었다.

"생애주기에 맞춘 지표 개발해 조사 취지 살려야"

권인숙 더불어민주당 의원. 권인숙 의원실 제공


질병청은 수동적인 반응을 보였다. 한 관계자는 "조사 결과를 활용하는 주체가 지자체이다 보니, 지역에서 따로 추가해 달라고 요청이 오면 항목 분과위 논의를 거쳐 추가할 수 있다"고만 말했다. 전문가들은 지역사회 건강조사의 취지를 살리려면 여성 생애주기에 따른 지표가 포함돼야 한다고 조언한다. 월경장애(다낭성난소증후군, 과도월경 또는 과소월경 등), 폐경 연령 및 관련 증상(불면, 안면홍조, 비뇨생식기 증상 등) 등이 주요 지표로 꼽힌다.

김새롬 시민건강연구소 젠더와건강연구센터 연구원은 "지역별 상황을 파악하고 맞춤형 보건지원을 하기 위한 조사로는 정보가 너무 제한적"이라며 "개인적 수준을 넘어 월경장애는 환경적 영향을 파악하고 폐경 증상은 장년층 노동생산성과도 연결되는 주요 지표"라고 설명했다. 권인숙 의원은 "현재 지역보건체계에 성인지적 관점이 부족하다는 게 드러난 것"이라며 "기초 자료로서 활용성을 높이려면 전문가 자문을 받아 지표를 개선하려는 노력이 필요하다"고 밝혔다.

이 기사는 언론사에서 사회 섹션으로 분류했습니다.
기사 섹션 분류 안내

기사의 섹션 정보는 해당 언론사의 분류를 따르고 있습니다. 언론사는 개별 기사를 2개 이상 섹션으로 중복 분류할 수 있습니다.

닫기
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