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은 또 어디서, 보호아동 홈리스 되다(2)

싸구려 고시원을 잃은 순간 모든 미래가 무너졌다

조해람·강은 기자
시설 퇴소 후 주거 문제로 어려움을 겪었던 김모씨가 지난달 28일 서울 영등포구 영등포역 광장에서 지나가는 시민들을 보고 있다. /한수빈 기자

시설 퇴소 후 주거 문제로 어려움을 겪었던 김모씨가 지난달 28일 서울 영등포구 영등포역 광장에서 지나가는 시민들을 보고 있다. /한수빈 기자

 살 곳 잃은 보호종료아동들
 일자리·정서 등 사회와 단절
 주거 불안에 일상도 ‘악순환’

월세 17만원짜리 고시원을 잃은 그날부터 삶은 도미노처럼 무너지기 시작했다.

고시원은 김모씨(33)가 스물여섯 살 때 시설에서 나와 처음 얻은 보금자리였다. 술에 찌들어 살던 홀아버지는 아홉 살 때 돌아가셨고 17년간 서울 은평구의 보육원, 경기 광주의 장애인재활원, 서울 강남구의 그룹홈을 옮겨 다녔다. 가족 없이 떠돌던 김씨의 소망은 하나였다. “내 진짜 자리는 어디일까.” 마지막 그룹홈을 나와 얻은 고시원은 김씨가 사회 안에 그 ‘자리’를 만들어나갈 발판이었다.

직장 동료의 사기로 돈을 모두 잃고 고시원을 나오던 그날 김씨는 ‘방 한 칸’만 잃은 것이 아니었다. 일자리, 건강, 심리·정서, 관계…. 한 사람의 삶을 이루는 고리들도 집을 잃자 조각조각 끊어졌다. “일을 배울 때 즐겁다”던 청년은 서울 영등포구의 한 노숙인시설에서 쇼핑백을 접는 소일거리로 시간을 보내게 됐다. 시설에서 생활할 때부터 앓던 우울증은 더 깊어졌다. “혼자서 지내고 계속 여기저기 옮겨 다니니까 우울감이 쌓인 거래요.” 무기력한 삶을 벗어나려고 경기 포천시의 플라스틱 주형 공장에 일자리를 잡기도 했다. 쥐가 들락거리는 컨테이너 숙소에서 지내면서도 그나마 숨통이 트였지만 사장의 부채로 공장이 문을 닫았다. 다시, 갈 곳이 사라졌다.

“뿌리가 없어지는 거라고 보면 됩니다. 가정이 있는 다른 청년들은 학교나 직장에서 잘리더라도 부모 집으로 돌아가면 되는데, 이들은 그럴 수 없는 거죠.” 보호종료아동의 자립실태와 욕구조사 연구를 수행한 이상정 한국보건사회연구원 아동정책연구센터장은 불안정한 주거가 보호아동의 삶에 복합적인 위기를 불러온다고 지적한다. “임시직이라도 찾았을 때는 그나마 안정화될 수도 있죠. 그런데 일자리를 잃고 주거가 사라지면 또 어딘가를 전전하게 돼요. 노숙을 하거나 친구 집을 전전하면 정서적으로 불안을 일으키고, 경제상황이나 학업 등을 다 흔들어놓는 문제가 생기죠.”

 잡히는 대로 아르바이트 했지만
 구할 수 있는 곳은 ‘닭장 고시원’
“내일 어떻게 될지 몰라 불안해”

■ 일도, 마음도, 미래도…주거 불안정의 연쇄 효과

주거가 불안정하면 일자리도 불안정해진다. 청소년쉼터에서 스무 살에 퇴소한 현진씨(25)는 물류 공장부터 편의점, 패스트푸드점, 횟집, 화장품 공장일에다 목공, 인형탈 쓰기까지 안 해 본 아르바이트가 없다고 했다. 쉼터의 엄격한 규칙에 질려 ‘홧김에’ 시작한 독립이었다. 경기 고양시에 5㎡(1.5평) 남짓한 고시원을 구했지만 더 숨이 막혔다. 재채기만 해도 옆방에선 벽을 두드렸다. “닭장을 보는 것 같았어요. 외국에서는 이런 크기로는 집을 못 짓게 한다던데, 왜 그런지 알겠더라고요. 기본권이 침해받는 감정이랄까.” 고시원에선 열흘을 못 채우고 나왔다. 할 수 없이 열일곱 살 때 도망치듯 나왔던 경기 군포시의 부모 집으로 돌아갔다.

반지하에 살던 어린 시절과는 다를 줄 알았다. ‘이를 닦는다’는 개념도 몰랐고, 배가 고프면 휴지를 먹곤 했던 그때와는. 욕설과 부부싸움, 폭력, 방임을 했던 부모와도 화해할 수 있을 거라 믿었다. 그러나 5년 전 현씨를 뛰쳐나오게 만든 문제들은 집에 그대로 고여 있었다. 수십 마리씩 나오는 벌레떼도 사라지지 않았다. 1년 만에 집을 나와 쉼터로 돌아갔을 때 현씨의 우울증은 더 깊어졌고, 강박증까지 새로 생겼다. “자로 재서 모든 물건을 정확히 90도로 맞춰놔야 했어요. 책상 같은 큰 물건도 몇 시간이 걸리든 맞췄죠. 휴대폰도 하루에 열댓번씩 초기화해서 연락처도 다 사라졌어요.”

몸을 누일 곳이 불안정해지자 마음도 기댈 자리를 잃었다. 몸과 마음, 두 축이 함께 흔들릴수록 안정된 일자리는 더 멀어졌다. 현씨는 특히 사람을 대하는 서비스직에서 어려움을 겪었다. “손님 응대를 해야 하는데…. 이상하게 다른 감정은 안 느껴지는데 화나는 감정만은 느껴지는 거예요. 손님들이 인사도 하지 않고 가면 무시당하는 것 같고.” 편의점에서 전자레인지 안 유리그릇을 꺼내다 깨뜨려 잘렸을 땐 “유리그릇 때문만은 아니었을 것”이라고 생각했다. 부족한 사회성 때문에 쫓겨난 거라고 그는 짐작한다.

보호아동 대부분이 심리·정서적 문제를 겪는다. 이상정 센터장은 “보호아동들이 발달기에 일반 가정과 같은 환경에서 일대일로 보호받지 못하기 때문에 불안감이 계속 생길 수 있다”며 “경계성 지적장애가 발현하는 사람도 점점 증가하는 추세”라고 말했다. 마음이 취약한 상태에서 겪는 ‘전전하는 삶’은 다시 불안을 키우고, 불안이 자라면 일자리도 주거도 점점 자리 잡기 어려워지는 악순환이다.

주거지원을 받지 못해 3년 동안 노숙을 전전한 장현우씨(27)가 노숙 생활을 마치고 잠시 머물렀던 고시원. 창도 없고 좁은 고시원이지만 거리에서 잠을 청하던 장씨는 이 고시원을 구한 것도 감사한 일이었다고 했다./ 한수빈 기자

주거지원을 받지 못해 3년 동안 노숙을 전전한 장현우씨(27)가 노숙 생활을 마치고 잠시 머물렀던 고시원. 창도 없고 좁은 고시원이지만 거리에서 잠을 청하던 장씨는 이 고시원을 구한 것도 감사한 일이었다고 했다./ 한수빈 기자

삶은 불안으로 가득 차고 ‘미래’는 상상 불가능한 영역으로 날아가버린다. 스무 살에 시설을 퇴소해 노숙과 친구 집, 고시원 등을 전전한 장현우씨(26)도 “원룸을 구한 지금은 사정이 낫지만 떠돌던 때는 내일 당장 또 어떻게 될지 모르니 항상 불안했다”고 했다. 신인성 고아권익연대 사무국장은 “하루하루 일당으로 사는 이들에겐 아무리 좋은 정책이 있다 한들 적용받지 못한다. 주소도 분명하지 않으니 행정적 부분에서 상담할 것도 없고, 떠도는 삶이 공고해진다”고 설명했다.

정서적으로 기댈 관계도 하나둘씩 끊긴다. 불안하고 누군가에게 기대고 싶은 마음을 파고들어 범죄를 저지르는 이들도 있다. ‘움직이는 청소년센터 엑시트’에서 거리 청소년들을 만나온 이윤경 활동가는 “휴대폰 깡(휴대전화를 개통해 소액결제로 현금을 마련하는 수법)은 이들에게 너무 흔해서 사기 축에도 못 든다”며 “정서적으로 의지할 관계가 별로 없는 상황에서 사기를 많이 당하니 쉽게 누굴 못 믿게 된다”고 했다. 장씨도 지인에게 사기를 당해 휴대전화를 개인 최대치인 4대까지 개통해 1600만원이나 빚을 졌다. “이용만 당하고 뭘 제대로 받은 적도 없어요. 어렸을 때부터 사람을 잘 만나야 하는데, 어디서 꼬였던 건지 모르겠어요. 연락되는 친구 하나만 있었어도….” 어느 날은 길을 가다 시설 시절 친구를 만났다. 그가 어디로 갔는지 찾아다녔다고 건네는 인사말을 장씨는 믿지 않았다.

■ 씩씩하던 대학생도 ‘집’ 하나 때문에

상대적으로 자립의 출발이 ‘나아 보이는’ 이들에게도 주거 불안정의 후폭풍은 감당키 어려운 위기다. A씨(26)는 보건복지부 산하 아동복지시설에서 만기를 채우고 자립 지원을 받으며 서울에 있는 한 대학 사회복지학과에 다녔다. 성인이 되자마자 취업한 이들과는 달리 대학에 가면 자립을 유예하고 시설 소속으로 남을 수 있다. 생활비로 월 25만원이 지급됐다. 3학년 2학기를 다니던 스물두 살 가을, 보육원의 자립지원전담요원은 “자립해서 기초생활수급자가 되면 등록금과 월 50만원 생계비를 받을 수 있다”고 안내해줬다. 그 말을 믿고 곧바로 보호종료를 해버린 게 실수였다. 수급자가 되려면 본인이 공공기관에 직접 신청해야 한다는 사실도, 심사 기간이 3개월이나 걸린다는 점도 미처 몰랐다.

교도소를 드나든 아버지 때문에 어릴 때부터 여러 시설과 여관방 등으로 옮겨 다니면서도 씩씩한 성격이었던 그도 한순간에 갈 곳이 사라지자 눈앞이 하얘졌다. 친구들과 살던 임대주택은 계약 만료를 앞둔 상태였다. 원하는 공부, 꿈꾸던 미래보다 당장 지낼 곳이 급했다. 고향 친구 집에 일단 얹혀살며 왕복 6시간을 통학했다. 학기를 겨우 마친 뒤 휴학계를 내고 1년 반 동안 기숙학원에서 수학을 가르치며 돈을 벌었다.

다행히 스스로 이곳저곳 정보를 찾고 도움을 구해 원룸을 하나 마련했다. 주변에서 ‘초이성적’이라는 평을 듣고 “어떤 상황에 처해도 속상한 느낌이 잘 안 들고 해결방안부터 찾는다”는 A씨였다. 제대로 돌봐주지 않는 아버지와, 항상 옮겨 다니며 살아온 삶이 만든 습관이다. “계속 옮겨 다니고 여유가 없다 보면 슬픈 건 중요한 이슈가 아니에요. 내일 학교를 갈 수 있을지, 밥은 어떻게 먹어야 할지 같은 게 걱정이죠.”

그런 그도 겨우 집을 구한 뒤엔 미뤄뒀던 감정이 한꺼번에 몰려왔다. “막상 목표(주거 마련)를 달성하니 너무 힘들었어요. 다른 가족은 짐 옮길 때도 도와주곤 하는데 혼자 다 하고 나니까….” 착실히 준비한 자립이 일순간 무너질 뻔했던 그때를 회상하며 A씨는 울었다.

 여가부 지원책 ‘현실성 부족’
 서울서 대상자 1명 나오기도
 자립 모니터링 인원도 태부족

■ 구멍 숭숭 뚫린 정부 지원

보호아동의 자립을 위해 정부가 준비한 지원의 총량은 결코 적지 않다. 그러나 그 지원을 받는 것은 ‘어떤 처지냐’가 아니라 ‘어떤 시설이냐’에 따라 자주 갈린다. 정부의 지원을 받지 못한 이들은 불안정 주거라는 늪에 빠진다. 여성가족부 산하 청소년쉼터에서 생활한 현씨는 복지부 산하 아동보호시설이 제공하는 자립 지원을 받지 못했다. 여가부는 지난해 6월 청소년쉼터 퇴소자에게 매달 30만원의 자립지원수당을 3년간 제공한다고 발표했지만, 제도 보완 전에 시설을 떠난 이들에겐 소급적용되지 않는다. 달라진 정책마저도 지급 기준이 까다롭다. 퇴소일 기준 직전 3년 중 2년 이상 쉼터를 이용해야 하고, 마지막 1년은 한곳에서 계속 생활해야만 지원 대상이 된다. 이미 자립수당을 수령한 이력이 있는 청소년이나 퇴소 후 3년이 지난 경우 지원수당을 신청할 수 없다. 서울시에서는 해당 정책으로 지원을 받을 수 있는 대상자가 단 1명으로 집계되기도 했다.

▶관련기사:[단독]여가부, 청소년쉼터 퇴소자 ‘자립수당’ 지급 기준 까다로워 서울엔 대상자 1명뿐

김씨도 2014년 서울 강남 그룹홈에서 나오면서 자립지원금이나 자립수당을 받지 못했다. 보호종료일로부터 과거 2년 이상 연속해 보호를 받은 이력이 있어야 지원을 받을 수 있는데, 마지막 시설에서 머문 기간이 1년이 채 안되기 때문이다.

[오늘은 또 어디서, 보호아동 홈리스 되다②]싸구려 고시원을 잃은 순간 모든 미래가 무너졌다

도와주는 이의 능력과 의지에 따라 자립의 성패가 갈리기도 한다. 복지 대상자가 직접 신청해야 서비스를 받을 수 있는 ‘신청주의’ 복지정책이 기본값인 한국에서는 특히 그렇다. 알지 못하면 누릴 수 없다. 황정아 아동권리보장원 자립지원부장은 “시설에 따라 보호종료아동에게 제공하는 정보나 교육에 차이가 난다”면서 “자립정보에 대해 시설 관계자가 자세하게 알고 있으면 정확한 정보를 줄 수 있는데 그렇지 않은 경우도 많다”고 말했다. 이상정 센터장은 “아동보호체계가 구축되긴 했지만 제도가 마련된 지 얼마 안 돼 아직 체계가 잡히지 못했다”며 “아동에게 복지수급 자격이 된다는 것을 알려주고 같이 신청서를 쓰자고 제안하는 데까지 가야 한다. 또 독립된 공간과 그 공간에서 잘 살 수 있도록 지원하는 지지체계를 장기적인 사회적 서비스 형태로 제공할 필요가 있다”고 지적했다.

시설을 떠난 이들의 자립 과정을 모니터링하고 관리해줄 시스템도 불비하다. 보호대상아동의 자립 준비를 돕고 자립 이후 5년간 모니터링하는 자립지원전담요원은 2020년 기준 전국 267명인데 이들이 관리해야 하는 대상자는 2만2807명이다. 1명당 85.4명을 담당하는 꼴이다. 시·군·구에는 사후관리를 담당하는 아동보호전담요원이 524명(지난해 10월 기준) 배치됐지만 이들은 아동학대·미혼모 관련 업무까지 모두 떠안고 있다. 게다가 대부분이 시간제 또는 기간제 직원이다. 업무는 많은데 고용이 불안정하니 전문성을 쌓을 만큼 오래 일하기 어렵다.

‘민간시설-아동-공공영역’의 삼각형이 조금씩 어긋난 틈으로 가족 없는 아이들만 불쑥 자라 내던져졌다. 실패해도 돌아갈 곳이 없는, 그래서 한 번만 삐끗해도 벼랑인 삶을 아슬아슬하게 걸으며 그들은 평범한 삶을 소망했다. “평범한 아빠가 돼서 가정을 꾸리고, 그냥 딱 평범하게만 살다 갔으면 해요(장현우씨).” “좋은 가정을 만드는 게 꿈이었어요. 길에서 자고, 이리 치이고 저리 치일 때마다 ‘내가 자식 낳으면 이렇게는 안 키워야지’라는 생각뿐이었어요(정찬주씨·보호종료아동).” 가정의 역할을 대신해야 할 국가가 외면한 자리에서 그들의 꿈은 대체로 닮아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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