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동안 스타트업 대표들이 모교에 기부한 사례는 많지만 투자자와 함께 하는 사례는 없었다. 대학의 학생창업자 양성 기능이 좋은 투자사 연결로 이어지고, 성공적인 창업가 배출로 선순환 된 '스타트업 생태계의 귀감'으로 평가된다.
20일 국내 1호 스타트업 AC 프라이머에 따르면 오는 22일 연세대에 2억2000만원 규모의 '윤자영 예비혁신기업가 장학금'이 조성된다. 재학 중 여성 패션플랫폼 스타일쉐어를 창업해 성공적인 혁신 기업으로 일군 윤자영 대표의 이름을 따왔다.
장학금은 윤자영 대표와 권도균 프라이머 대표, 이택경 매쉬업엔젤스 대표가 출자했다. 이재웅 다음 창업자(전 쏘카 대표)도 투자회사를 통해 기부했다. 권도균·이택경·이재웅 3명의 대표는 모두 프라이머 초기 파트너로 참여하며 윤 대표와 인연을 맺은 인물들이다.
'공순이' 학생의 창업 도전, 손 내밀어준 프라이머
스타트업 업계의 '대부'로 불리며 투자에 매우 엄격하기로 유명한 권 대표가 적극 손을 내민 것은 이례적이다. 그는 "윤 대표가 이미 패션 분야에 오랫동안 몰입하면서 연구를 해왔다. 준비가 어느 정도 되어 있었다"고 말했다.
권 대표는 "사업을 시작할 때 인공지능(AI)이니 뭐니 트렌드를 쫓기보다는 스스로 오랫동안 관심 갖고 몰입했던 영역에서 창업하는 것이 더 중요하다. 윤 대표가 그런 케이스였고 축적된 인사이트를 사업으로 물꼬 터주는 것이 AC의 역할"이라고 강조했다.
'이후 스타일쉐어는 빠르게 후속투자를 받고 행복하게 성장하고 승승장구 했다'라는 이야기가 이어졌다면 좋았겠지만 현실은 만만치 않았다. 스타일쉐어는 프라이머클럽 7번째 멤버로 초기 투자를 받았으나 1년 반이 지나도록 후속 투자를 받지 못했다.
벤처캐피탈(VC)들은 스타일쉐어의 사업모델에 대해 시큰둥한 반응을 보이며 투자를 하지 않았다. 그럼에도 스타일쉐어는 이용자들을 늘려가며 성장세를 보였고, 규모가 커질수록 자금 사정은 꼬여만 갔다.
기업가치 2억에서 3000억으로 '1500배 폭풍성장'
하지만 네이버 계열사에서 경쟁 서비스를 내놓으면서 또다시 위기가 찾아왔다. 윤 대표는 오히려 새로운 시장이 더욱 커지는 기회라고 생각하며 스타일쉐어의 경쟁력 강화에 집중해 이용자 이탈을 막았다. 경쟁자는 출시 7개월 뒤 시장에서 사라졌다.
힘들었던 시기 윤 대표는 '밥 사달라'며 권 대표를 찾아와 그의 앞에서 펑펑 눈물을 흘렸다고 한다. 권 대표는 마침 야외 테이블에 자리를 잡았던 터라 휴지를 뽑아주며 위로하랴, 지나가는 사람들 눈치를 보랴 진땀을 흘렸다.
자금이 거의 소진돼 현금흐름에 큰 문제가 우려되는 상황에서 스타일쉐어는 험난했던 25억원 규모의 시리즈A 투자를 유치하며 '데스밸리'를 넘어섰다. 매출 성장이 검증되자 시리즈B 후속 투자유치는 여러 VC로부터 클럽딜 형태로 무난하게 마무리했다.
이후 2018년 윤 대표는 온라인 편집숍 '29CM'가 매물로 나왔다는 소식을 접하고 빠르게 시리즈C 투자를 유치하며 29CM를 인수했다. 성장세를 눈여겨보던 국내 온라인 패션플랫폼 1위 업체 무신사는 지난 5월 스타일쉐어와 29CM를 3000억원에 인수했다.
초기 투자 당시 2억원에 불과했던 스타일쉐어의 기업가치가 10년6개월 만에 3000억원으로 1500배 뛰었다. 패션에 관심이 많던 '공순이' 대학생이 학교를 통해 좋은 AC를 만나 10년 동안 일군 기업을 엑싯(M&A)하며 '성공한 창업가'로 기록되는 순간이었다.
윤 대표는 힘든 순간을 극복할 수 있었던 방법에 대해 "그때마다 이 일을 왜 하는지 돌아봤다"며 "우리 서비스가 사람들에게 도움이 되고 직원들이 스타일쉐어를 자기 회사처럼 생각하고 열심히 일하는 모습을 보며 슬럼프를 극복했던 것 같다"고 했다.
대학 인재 배출→AC·VC 발굴·육성→성장→장학금→후배 발굴 '선순환'
권 대표는 "대학 창업지원단이 좋은 창업자들을 소개해준 덕분에 좋은 투자를 할 수 있었다"며 "앞으로도 대학이 창업의 요람으로서 좋은 학생창업자들을 배출하고 소개해주기를 바란다"고 했다.
이어 "VC들 입장에서도 좋은 팀에 투자할 수 있는 기회가 더욱 많아진다"며 "투자수익금이 다시 학교로 돌아가 학생창업자를 발굴하는데 사용되는 선순환 효과를 낼 수 있도록 해야 한다. 이번 장학금이 이 같은 사이클의 시금석이 되기를 바란다"고 강조했다.
윤자영 대표는 "이번 장학금은 투자자들이 먼저 취지를 이야기해주셔서 감사한 마음에 참여할 수 있었다. 의미 있는 기회를 주신데 대해 매우 감사하다"고 소감을 전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