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성애·업무 열정 ‘두 줄기’ 맞춰 삶 재조직해야

박상희(샤론정신건강연구소 소장)

(4) 딸아이도, 자기 자신도 모두 소중해요

미혼부 가족에 대해서는 ‘아빠의 품’ 김지환 대표를 통해 처음으로 알게 됐다. 미혼모와는 달리 미혼부는 ‘돈 벌 수 있고 건강한 젊은 남자가 아이 하나를 못 길러서 징징거려’라는 말을 듣는다. 하지만 아이가 어느 정도 클 때까지는 미혼모와 마찬가지로 사회가 아이와 아빠를 돌봐줘야 한다. 미혼부의 정신적 케어와 지지 역시 중요하다(상담 과정에서 아동놀이치료를 담당한 전순초 원장에게 감사드린다).

미혼부 가족에 대해서는 ‘아빠의 품’ 김지환 대표를 통해 처음으로 알게 됐다. 미혼모와는 달리 미혼부는 ‘돈 벌 수 있고 건강한 젊은 남자가 아이 하나를 못 길러서 징징거려’라는 말을 듣는다. 하지만 아이가 어느 정도 클 때까지는 미혼모와 마찬가지로 사회가 아이와 아빠를 돌봐줘야 한다. 미혼부의 정신적 케어와 지지 역시 중요하다(상담 과정에서 아동놀이치료를 담당한 전순초 원장에게 감사드린다).

■상담 신청

아이가 너무 예쁜 거, 너무 좋은 거예요. 아이랑 있는 게 행복해 2평짜리 고시원이 좁은 거도 모르고 지냈어요. 타인에게는 그렇게 공격적으로 되는데 아기랑 둘만 있으면 얼마나 좋은지 많이 웃어요. 신용불량자인데다 먹거리가 제대로 없는데도 현실을 잊게 되는 거예요.

아이와 둘이 버려졌을 때는 세상에 대한 분노가 너무 컸어요. 유모차를 끌고 가다가 누가 클랙션만 울려도 싸웠어요. 누구든 나랑 내 아이를 건들면 다 죽여버리겠다, 그런 생각이었어요. 그럴 때면 다른 사람과 눈도 마주치지 못하고, 10분만 지나도 심장이 쿵쾅거렸어요. 그래서 대인기피증이 생겼어요.
 
제가 유일하게 출생 신고를 해본 미혼부니까 미혼부들이 저를 찾는 거예요. 처음에는 나서서 도와주지 않았어요. 그런데 어느 날 한 남자가 지병으로 사망했는데 그 옆에 생후 8개월쯤 된 아기가 굶어서 죽어있었다는 기사를 신문에서 봤어요. 상황이 그려지듯 했어요.
 
미혼부의 아기는 출생 등록이 안되니까 지원금이 없었어요. 기사를 본 다음 마음이 괴로웠어요. ‘내가 적극 도와주면 아기라도 살 수 있을 텐데 내가 뭐라고 숨어있나?’ 그래서 ‘아빠의 품’이라는 단체를 만들게 됐어요.
 
사랑이에게 정말 미안하고 두려운 건 허락 없이 제가 공개적으로 활동을 했다는 거예요. 사춘기가 돼서 아빠와 자신에 대한 기록들을 보다가 상처를 받으면 어쩌나 하는 거 말이에요. 아빠가 다른 사람을 돕는 좋은 일을 한 거니까 다 이해해줄 거다? 그럴 수도 있지만 아닐 수도 있어요. 그게 너무 미안하고 가장 두려워요.
 
사랑이가 유치원 다니던 때 제가 너무 바빠 머리를 묶어주지 못한 날이 자주 있었어요. 어느 날 한 아이가 말했다는 거예요. “너는 엄마 없어? 머리 안묶어줘?” 나중에 유치원 선생님이 그러던데, 그 말을 들은 사랑이가 펑펑 울었다는 거예요. 그런데 그날 저녁에도 아이는 제게 엄마 얘기나 친구 얘기를 하지 않았어요. 그때 알았어요. 사랑이가 ‘엄마가 없어도 괜찮은 게 아니고 아빠가 속상할까봐 얘기하지 않는구나’ 라고 말이에요. 마음 아팠어요.
 
한 달 전부터 베이비박스(부모로부터 버려진 아이들을 돌보는 곳)의 책임자가 됐어요. 저는 사랑이를 너무 좋아하지만 다른 아이들도 그렇게 예쁘더라고요. 현재 제 문제는 시간이 부족하니 늘 정신이 없다는 거예요. 이러다 번아웃될 것 같아요. 집도 없고, 기술도 없고, 부인도 없는 홀아비 현실이 두려워요. 잠못 이룰 때가 많아요.
 
제 꿈이요? 글쎄요. 제가 성경을 잘 모르지만 딱 한 구절은 알아요. “가서 너도 이와 같이 하라.” 예전에 저는 정말 부족한 사람이었지만 조금씩 나은 사람이 되어가고 있는 것 같아요. 일단은 주어진 환경에서 최선을 다해서 살고, 지금처럼 사랑이와 작은 행복들을 나누고, 사랑이를 잘 키우는 게 제 꿈인 거 같아요. 원대하거나 큰 꿈은 없습니다.

박상희 소장이 ‘아빠의 품’ 대표인 김지환씨(왼쪽)와 상담을 하고 있다. 샤론정신건강연구소 제공

박상희 소장이 ‘아빠의 품’ 대표인 김지환씨(왼쪽)와 상담을 하고 있다. 샤론정신건강연구소 제공

■상담 내용
 
지환씨(사랑이 아빠)와의 첫 만남이 떠오르네요. 한 단체의 미혼부 케어 프로젝트에 제가 참여하면서였지요. 이어 놀이치료를 받은 사랑이의 학부모 상담으로 이어졌고요. 처음에 저는 신기하고 의아했어요. 미혼모가 아니고 미혼부? 이야기를 나누면서 내내 ‘와, 세상에 이런 아빠가 있구나’하면서 감탄했어요.

솔직히 고백할게요. 훌륭한 아빠들을 많이 봐왔지만, 그럼에도 저는 부성애가 모성애 아래에 있다고 생각해 왔어요. 자기 뱃 속에 아기를 품었던 모성애에 비하면 약간 부족하고 후천적인 것이라고요. 그런데 사랑이 아빠를 만나 상담하면서 처음으로 제 생각이 잘못된 것일 수 있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사랑이는 너무 잘 컸어요. 밝고, 귀엽고, 사랑스런 아이예요. 아버님이 이야기하는대로 사춘기가 되면 다소 힘들 수 있겠지만 여느 아이들처럼 결국은 잘 지나갈 거라고 보고 싶어요. 사랑이를 상담한 동료 상담사도 사랑이가 구김살도, 우울증도 없는, 밝고 사랑스런 아이라고 해요. 학교에서도 잘 적응하고, 혼자서도 많은 것을 척척 잘 해내는 아이잖아요.
 
제가 좋아하는 하인즈 코헛이라는 심리학자가 있어요. 코헛에 따르면, 아이가 건강하게 자라기 위해선 ‘사랑하고 인정해주는 대상’(mirroring selfobject)과 ‘의지할 수 있고 보호해주는 대상’(idealizing selfobject)이 필요하다고 해요.
 
여기서 아이라는 존재도 중요하지만 아이의 대상도 중요해요. 아빠, 엄마가 다 있으면서 이 두 가지 대상의 기능 가운데 한 가지도 주지 않는 부모들이 많아요. 그런데 지환씨는 사랑이에게 이 두 가지를 다 주고 있어요. 그것도 넘쳐 흐르게 안겨주고 있어요. 사랑이는 아빠의 사랑과 보호라는 자양분을 받아 어여쁜 나무로 무럭무럭 잘 자라고 있어요.
 
사랑이 엄마에 대해 이야기하지 않으셨다고 했죠. 행여 사랑이에게 상처가 될까봐 그랬을 거예요. 그런 어려운 이야기를 제게 해줘 감사해요. 하지만 저는 지환씨가 이제는 사랑이에게 엄마 이야기를 해줘도 된다고 생각해요. 사랑이는 언제까지나 아이가 아니에요. 아빠와 엄마의 소중한 사랑의 열매인 자신을 목숨 걸다시피 끝까지 지켜내고 있는 아빠의 사랑과 책임감을 사랑이는 이제 알고 있을 거예요. 사랑이는 지환씨가 염려하는 것처럼 겁이 많고 상처를 잘 받는 아이가 아닐 거예요. 사랑과 책임감이 우주 최강인 아빠가 늘 옆에 있어서 저는 그렇게 큰 걱정이 되진 않아요.
 
상담사로서 드리고 싶은 것은 오히려 다른 이야기에요. 사랑이와의 관계 못지않게 본인의 문제를 돌아봐야 해요. 상담 전에 저는 지환씨가 생활을 하면서 미혼부들을 돕는 게 무리라고 생각했어요. 번아웃 직전까지 간 일상이 그것을 잘 보여주고 있어요.
 
그런데 상담을 하면서 저는 지환씨가 두 가지 일 모두 그만둘 수 없다는 것을 발견했어요. 지환씨는 사랑이를 만난 서른 네 살 전까지 석사 출신 장교였고, 누구보다 자기의식이 뚜렷했던 사람이에요. 사랑이가 태어나자 자신의 모든 것을 부인하고 아이를 지키는데 몰두했지만 34년 동안 쌓아온 그 의식이 사라지진 않았어요.
 
제가 말씀드리고 싶은 건 정체성, 다시 말해 아이덴티티(identity) 문제입니다. 지환씨가 느끼는 불안의 실체는 아이덴티티의 불안이에요. 지환씨의 내면에는 이 둘이 모두 중요한데 둘의 관계가 정리되지 않은 채 뒤엉켜버린 채로 있어요. 사랑이도 중요하지만 자기 자신도 소중해요.
 
사랑이에게 소홀히 하라는 게 결코 아니에요. 자신의 일과 사랑이 키우기의 관계를 다시 잘 조율하면 좋겠다는 말이에요. 일이 복잡할 때는 무엇이 줄기이고 무엇이 가지인지를 잘 구별해야 해요. 지환씨에게 줄기는 자신의 일과 사랑하는 딸아이에요. 이 소중한 두 줄기를 중심으로 시간의 분배와 일의 우선순위를 체계적으로 잘 잡으셔야 해요.
 
지환씨가 성경을 인용했으니 저 역시 성경을 인용해 답할 게요. ‘지금은 희미하나 그때에는 온전히 알리라.’ 다시 한 번 이야기하면, 자신의 일과 사랑이 키우기를 중심으로 일상과 생활을 잘 재조직해 이제까지 해온 것처럼 열심히 살면 지환씨 자기 자신과 사랑이를 모두 납득시킬 수 있을 거예요. 용기를 내시길 바랍니다.

■후기
 
우리 사회에서는 한부모 가족, 조손 가족, 다문화 가족 등 여러 형태의 가족이 존재한다. 이러한 가족들에 대한 포용이 넓어졌지만, 여전히 한계와 편견도 존재한다. 미혼부 가족에 대해서는 ‘아빠의 품’ 김지환 대표를 통해 처음으로 알게 됐다. 미혼모와는 달리 미혼부는 ‘돈 벌 수 있고 건강한 젊은 남자가 아이 하나를 못 길러서 징징거려’ 라는 말을 듣는다. 하지만 갓난아기는 24시간 지켜봐야 하는 존재이다. 아이 아빠에게 당장 나가 돈 벌라는 말은 아이에게 양육자의 돌봄을 빼앗는 말이다. 아이가 어느 정도 클 때까지는 미혼모와 마찬가지로 사회가 아이와 아빠를 돌봐줘야 한다. 미혼부의 정신적 케어와 지지 역시 중요한 사회문제의 하나인 셈이다(상담 과정에서 아동놀이치료를 담당한 전순초원장에게 감사드린다).

박상희 소장은

[박상희의 구해줘! 내 맘]부성애·업무 열정 ‘두 줄기’ 맞춰 삶 재조직해야

이화여대에서 목회상담학으로 석사와 박사학위를 받았다. 2005년 이화여대 출신 30여 명의 상담학 석·박사들과 함께 전문적 심리상담과 코칭에 주력하는 샤론정신건강연구소를 창립해 소장을 맡고 있다. 한국열린사이버대 상담심리학과 겸임교수로도 일하고 있다.


*위의 사례는 유튜브채널 ‘박상희의 심리스튜디오’에서 진행 중인 무료심리상담 ‘박상희의 구해줘! 내 맘’에서 1월 3일부터 영상으로도 볼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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