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로나19로 '번아웃' 겪는 세계···주 4일제 도입 논쟁 불붙는다

김혜리 기자

코로나19로 위축됐던 경제가 회복되면서 열악한 근무환경에 내몰린 노동자들이 스스로 사표를 던지는 ‘대퇴사’ 현상이 나타나고 있다. 동시에 코로나19로 인한 재택근무가 보편화되며 탄력적 근무방식 도입 논의의 기반도 마련됐다. 이런 환경 변화를 배경으로 주4일 근무제 논의가 현안으로 떠올랐다.

블룸버그통신은 23일(현지시간) 영국의 아톰은행이 임금 삭감 없이 주4일 근무제를 도입하기로 했다고 보도했다. 아톰은행은 영국의 최초 인터넷전문은행이다. 아톰은행은 공식 블로그를 통해 “재택 근무의 일상화는 시기상조로 여겨졌던 새로운 근무 관행이 빠르게 도입될 수 있음을 증명했다”면서 “지난 1일부터 직원들의 정신적, 신체적 안녕을 지원하고 능률을 향상하기 위해 주4일제 근무를 시작했다”고 밝혔다. 이로써 아톰은행 직원 430명은 이전과 같은 임금을 받으면서 월요일이나 금요일 중 하루를 쉬게 됐다. 이들의 주중 근무시간은 주 37.5시간에서 34시간으로 줄어들었다.

글로벌 생활용품 업체인 유니레버의 뉴질랜드 지부도 지난 12월부터 1년간 주4일제 근무 실험에 나섰다. 닉 뱅스 유니레버 뉴질랜드 전무는 “기존의 근무형태는 구식이며 더 이상 목적에 부합하지 않는다”며 “시간이 아닌 결과물로 성능을 측정하는 주4일제를 도입할 것”이라 밝혔다.

정부 차원에서 주4일제를 실험적으로 도입하겠다고 선언한 국가들도 있다. 블룸버그통신에 따르면 스페인 정부는 전국적으로 주4일제를 실험하기로 하고 예산 5000만유로(약 665억원)를 배정했다. 희망업체 200곳을 선정해 3년 동안 주4일제를 시험하고, 손해액을 정부가 부분적으로 보상하는 방식이다. 경직된 직장문화로 유명한 일본에서도 지난 1월 자민당이 주4일제 도입을 제안하면서 희망 직장인에 한해 선택적 주4일제 시행이 검토 중이다.

기업들은 대퇴사 시대를 맞아 필수 인력을 붙잡기 위한 수단으로 주4일제를 추진하고 있다. 코로나19로 탄력적 근무제가 시행되는 동시에 인력 부족, 휴가 삭감 등으로 노동 강도가 높아지면서 지친 직원들이 떠나갈까 걱정하는 각국 기업들이 주4일제 도입을 고려하고 있다는 것이다. 실제 CNN에 따르면 금융기업 제프리스가 최근 직장을 그만둔 22~35세 미국인들을 대상으로 실시한 여론조사에선 응답자의 80%가 주4일 근무제에 찬성한다고 답했다. 이전 직장에서 무엇을 제공했으면 퇴사를 하지 않았을 것이냐는 질문에 가장 많이 나온 답변은 임금 인상(43%)이었고 그 다음이 주4일 근무제(32%)였다.

주4일 근무제가 이미 자리잡은 나라도 있다. 북유럽의 작은 나라 아이슬란드다. BBC에 따르면 아이슬란드 정부와 레이캬비크 시의회는 지난 2015년부터 2019년까지 총 2500명의 노동자를 대상으로 주4일제 연구에 나섰다. 주 40시간 근무에서 주 35~36시간 근무로 노동시간을 줄이는 대신 임금은 동일하게 지급하는 방식이었다. 그 결과 대부분 회사에서 생산성이 유지되거나 오히려 향상되었고 이는 전면적인 근무 방식 재협상으로 이어졌다. 현재 아이슬란드 노동자의 86%는 주4일제를 적용받을 권리를 얻게 된 것으로 알려졌다.

물론 주4일제의 한계도 지적된다. 지난해 3월 갤럽 연구에 따르면 주4일 근무하는 사람들은 주5일 근무자들보다 비교적 행복 수준이 높고 만성적인 피로감을 덜 느끼는 것으로 드러났다. 하지만 공동체에서 분리됐다는 느낌을 받는다는 이들도 있었다고 뉴욕타임즈는 전했다. 회사나 부서, 상사 등과 이미 거리감을 느끼고 있던 직원들은 주4일 근무로 더 큰 단절감을 느끼게 된다는 것이다.

주4일제가 현실적으로 모든 직종에 적용 가능하냐는 의문도 제기된다. 가디언에 따르면 영국의 싱크탱크 사회시장재단(SMF)은 주4일제 시행으로 인한 사회적인 비용을 누가 부담할지 명확해지지 않는 한 주4일제가 표준이 될 수 없다고 보았다. 주4일제가 전면적으로 시행될 경우 기업들은 수익이 줄어들 것을 각오하고 소비자들도 제품 가격 상승을 감수해야 할 것인데 비용 부담의 주체에 대한 논의가 확실히 이루어져야 한다는 것이다.

임금 보전 등 주4일제 도입을 위해 풀어야 할 난제들도 적지 않다. SMF의 제이크 셰퍼드 연구원은 임금 삭감 없는 주4일제 근무는 불가능하다며 “주4일제 정착은 고소득자들에게만 가능한 이야기일 수도 있다”고 가디언에 말했다. SMF의 여론조사에 따르면 영국 근로자 10명 중 8명은 임금을 삭감해야 할 경우 주4일제에 찬성하지 않는다고 답했다. 급여 감소로 이어지더라도 근로시간을 단축할 의사가 가장 높은 직종은 고소득 사무직이었으며, 요양보호사나 서비스직 종사자들은 오히려 현재보다 더 오래 일하고 싶다고 답한 것으로 전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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