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본프리아일랜드의 카본발전소들

강연주·김한솔 기자
‘기후변화’라는 말이 낯설고, ‘탄소중립’이라는 단어는 거의 쓰이지도 않던 2012년. 제주도는 섬의 미래를 바꿀 만한 선언을 했다. 2030년까지 제주를 ‘탄소배출 없는 섬(CFI·Carbon Free Island)’으로 만들겠다는 것이다. 제주에서 쓰는 전력 100%를 신재생에너지로 만들고, 모든 차는 전기차로 전환하겠다는 이 대담한 계획은 당시에는 크게 주목받지 못했다.

그 후 10년이 지났다. 변화가 아니라 ‘위기’라고 할 만큼 기후 상황은 악화됐다. 코로나19 팬데믹에도 불구하고 전 세계 정상들이 기후 문제만을 논의하기 위해 한자리에 모일 정도다. 한국도 2020년에 대통령이 ‘2050 탄소중립’을 선언했다. 2050년까지 탄소 순배출량을 ‘0’으로 만들기 위한 위원회가 구성됐고, 지난해에는 기후위기 대응을 목표로 하는 기본법이 제정돼 오는 3월 시행을 앞두고 있다. 10년 전부터 제주가 해왔던 정책들이 육지에서도 이제 막 시작되고 있다. 제주는 기후위기 극복을 위해 탄소중립으로 가는 한국의 ‘먼저 가본 미래’인 셈이다.

경향신문은 2022년 신년기획 시리즈로 ‘탄소중립 제주, 미리 가본 미래’를 8회에 걸쳐 연재한다. 그동안 제주가 추진해온 탄소배출 없는 섬 정책의 과정과 결과가 나라 전체의 탄소중립 정책에 시사하는 바가 무엇인지 짚어보는 기획이다.

탄소배출 없는 섬 정책의 두 축은 ‘에너지 전환’과 ‘전기차 보급’이다. 현재 정부가 본격적으로 추진하는 탄소중립 정책과 거의 같다. 2020년 현재 제주의 신재생에너지 발전량은 16.2%로 육지(약 6%)에 비해 훨씬 높다. 전기차 100대당 충전기 97개라는 풍부한 인프라도 갖추고 있다. 그런데도 제주의 총 탄소배출량은 탄소배출 없는 섬을 선언한 2012년에 비해 그다지 줄지 않았다. 순배출량 기준으로는 조금 줄었지만, ‘2030 탄소제로’를 달성하긴 쉽지 않아 보인다.

일찌감치 탄소제로라는 목표를 세우고 달려온 제주의 탄소배출량은 왜 줄지 않은 것일까. 복잡하게 얽혀 돌아가는 사회의 결과물인 ‘탄소’에 대해 너무 단순하게 접근한 것은 아닐까. 탄소중립은 단순히 탄소배출량을 줄이는 것만이 아니라 지금까지의 우리 생활과 사회 구조를 완전히 새롭게 바꾸는 것이기 때문이다. 1화 ‘카본 프리 아일랜드의 카본 발전소’를 시작으로 그 원인과 교훈을 하나씩 살피고자 한다. 김한솔 기자 hansol@kyunghyang.com


제주도 제주시 한경면 앞바다의 탐라해상풍력발전단지 뒤로 아침 해가 밝아오고 있다. 탐라해상풍력은 국내 최초의 상업용 해상풍력발전이다. 제주도는 2030년까지 전력의 100%를 재생에너지로 공급하는 ‘카본 프리 아일랜드(CFI)’ 정책을 시행하면서 풍력과 태양광 등 재생에너지 보급을 크게 늘렸다. 권도현 기자

제주도 제주시 한경면 앞바다의 탐라해상풍력발전단지 뒤로 아침 해가 밝아오고 있다. 탐라해상풍력은 국내 최초의 상업용 해상풍력발전이다. 제주도는 2030년까지 전력의 100%를 재생에너지로 공급하는 ‘카본 프리 아일랜드(CFI)’ 정책을 시행하면서 풍력과 태양광 등 재생에너지 보급을 크게 늘렸다. 권도현 기자

제주는 2012년 무렵 ‘탄소 배출 없는 섬’ 정책을 선언했다. 하지만 제주의 총 탄소배출량은 이 선언 이후로 그다지 줄지 않았다. 발전부문에서의 탄소배출량도 마찬가지다. 사진 크게보기

제주는 2012년 무렵 ‘탄소 배출 없는 섬’ 정책을 선언했다. 하지만 제주의 총 탄소배출량은 이 선언 이후로 그다지 줄지 않았다. 발전부문에서의 탄소배출량도 마찬가지다.

제주도 동쪽 해안 마을인 제주시 구좌읍 일대는 ‘제주 바람길’로 불린다. 바람의 섬인 제주에서도 특히 바람이 더 많은 지역이다. 제주공항에서 해안도로를 따라 약 50분 거리에 있는 구좌읍 김녕리에 닿으면 차창 밖으로 쪽빛 바다를 낀 흰색의 육상풍력발전기를 볼 수 있다. 차로 10분 거리에 있는 구좌읍 월정리, 행원리까지도 바람개비 풍경이 이어진다. 강한 바닷바람 속에 풍력발전기를 배경에 두고 사진을 찍는 사람들의 모습이 더러 있다. 제주 서쪽도 마찬가지다. 서제주 두모리에서 금등리에 이르는 바다 한가운데 높이 80m 해상풍력발전기 10대가 일렬로 서서 돌아가고 있다.

“제주는 ‘탄소 배출 없는 섬(CFI·Carbon Free Island)’ 정책을 10년간 추진해오면서 풍력발전기 보급에 주력해왔어요. 바람 많은 섬의 특징을 최대한 살릴 수 있는 발전원이거든요.” 안재홍 제주녹색당 사무처장이 말했다. 그의 차에 올라 함께 제주 북쪽으로 향했다. 안 처장은 “2020년부터는 제주의 태양광 발전 보급이 풍력발전을 앞섰다”고 덧붙였다.

서쪽 해안가를 지나 북서쪽 애월읍에 닿으면 안 처장의 설명이 풍경으로 다가온다. 애월읍은 ‘태양광 마을’로도 불린다. 애월읍 내에서도 애월리는 바로 옆 고내리, 곽지리와 함께 태양광 설비가 가장 많이 보급된 마을 중 하나다. 낮은 언덕배기에 위치한 애월리 복지회관에서 바다 방향으로 마을을 내려다보면 지붕에 비스듬히 설치된 가정용 태양광 설비들이 여러 개 눈에 들어온다.

“태양광 발전 하니까 좋아요. 여름에 보통 5만원 넘게 전기요금이 나왔는데, 태양광 패널을 설치하고 나니까 1만원밖에 안 나와요.” 애월리 이장 이부자씨가 말했다. 이 마을에서만 40년을 살아온 이씨는 8년여 전부터 집에 태양광 패널을 설치해 사용해오고 있다. 2030년까지 섬 내 전력 100%를 재생에너지로 전환하겠다는 탄소 배출 없는 섬 정책 선언 후 10년, 재생에너지 발전은 어느덧 제주의 흔한 풍경이 됐다. 제주도의 재생에너지 발전 비중은 2020년 기준 16.2%로 육지(약 6%)의 약 3배 수준이다.

하지만 지나온 풍경에 ‘친환경’ 발전원만 담긴 것은 아니다. 애월리 복지회관에서 10분 정도 걷다보면 애월항이 나오는데, 이곳에서 크고 둥근 회색빛 탱크 두 개를 볼 수 있다. 한국가스공사의 ‘제주 액화천연가스(LNG) 기지’에 있는 LNG 저장탱크들이다. 이씨는 “수년 전 LNG 기지가 애월항에 들어오는 대신, 희망하는 주민들을 대상으로 태양광 패널 설치가 지원됐다”고 말했다. 1127가구의 작은 마을에 재생에너지인 태양광과 화석연료인 LNG가 나란히 공존하게 된 배경이다. 2년여 전 완공된 LNG 기지는 섬 내 화력발전소 세 곳에 LNG 연료를 공급한다.

제주도 애월읍 애월리에서는 집집마다 설치된 태양광 발전을 쉽게 볼 수 있다. 반면 마을 인근에 위치한 애월항 부근에서는 2019년 10월에 준공된 ‘제주 액화천연가스(LNG) 기지’의 모습도 있다. 바다 쪽에 보이는 두 개의 둥근 탱크는 ‘LNG 저장탱크’인데, 도내 화력발전소에 LNG 연료를 공급하는 역할을 한다. 권도현 기자

제주도 애월읍 애월리에서는 집집마다 설치된 태양광 발전을 쉽게 볼 수 있다. 반면 마을 인근에 위치한 애월항 부근에서는 2019년 10월에 준공된 ‘제주 액화천연가스(LNG) 기지’의 모습도 있다. 바다 쪽에 보이는 두 개의 둥근 탱크는 ‘LNG 저장탱크’인데, 도내 화력발전소에 LNG 연료를 공급하는 역할을 한다. 권도현 기자

■‘카본 프리 아일랜드’라면서요

제주 CFI 계획대로라면 화석연료 기반 발전원들의 도입은 중단하거나 기존에 있던 것도 폐지하고, 풍력과 태양광 같은 재생에너지만 더 확대했어야 할 것처럼 보인다. 하지만 최근 4년 새 제주에는 228㎿급의 제주복합화력발전소 1, 2기와 146㎿급의 남제주복합화력발전소가 새로 지어졌다. 모두 화석연료인 LNG 발전소다. LNG 발전은 석탄이나 석유보다는 탄소를 적게 배출하지만, 가스 채굴과 운송, 연소를 하는 전 과정에서 배출되는 탄소의 양은 결코 적지 않다. “사실 LNG는 친환경과는 거리가 있어요. 그래서 정부도 LNG를 석탄에서 재생에너지로 넘어가기 위한 ‘가교’로 쓰되, 장기적으로는 감축해 나가기로 한 거고요.” 김주진 기후솔루션 대표가 말했다. 기후솔루션은 최근 발간한 ‘가스발전의 실체’ 보고서에서 “그동안 천연가스는 화석연료임에도 불구하고 온실가스 및 대기오염물질 배출이 적은 청정연료로 인식되어왔다”며 “그러나 가스발전 역시 화석연료 연소 기술에 기반하고 있기 때문에 질소산화물과 미세먼지 등 대기오염 물질을 배출한다”고 지적했다. 제주의 LNG 발전소로는 제주복합화력발전소와 남제주복합화력발전소, 그리고 2019년에 연료를 LNG로 전환한 한림복합화력발전소가 있다.

재생에너지 100%를 목표로 했던 제주에 LNG 발전소가 새로 들어선 주된 이유는 더 많은 전력이 필요했기 때문이다. 2010년대 들어 제주의 유입인구가 지속적으로 증가하면서 필요한 전력량 또한 가파르게 늘었다.

제주의 전력 사용량은 2007년 이후 60% 이상 급증했다. 문제는 제주에서 필요한 것보다 훨씬 큰 규모의 LNG 발전소가 들어왔다는 것이다. 이전까지 제주에 있던 화력발전소 중 가장 큰 규모가 105㎿였는데, 새로 들어온 LNG 발전소는 1기당 평균 용량이 약 124㎿다. 제주에너지공사에서 선임연구원으로 일했던 김동주 전국 시장·군수·구청장협의회 전문연구관은 “제주 지역에 적합한 발전기 용량을 산정했어야 했는데, 기존 관성대로 일단 큰 것을 들여왔다”고 말했다.

애초에 왜 재생에너지를 더 늘리지 않고 LNG 발전을 늘렸을까. LNG 같은 화석연료 기반의 발전원이 현재로선 재생에너지보다 안정적인 발전원으로 여겨지기 때문이다. 현재 국내 전력 계통(시스템)은 석탄이나 LNG 같은 화석연료 기반 발전원들을 기본값에 두고 구성돼 있다. 10년간 재생에너지 보급에 주력해왔던 제주도 마찬가지다. 제주전력거래소의 김영한 본부장은 “안정적인 전력 공급을 위해선 발전원 하나가 고장이 나더라도 이를 보충해 줄 여유분이 필요한데, 재생에너지는 이런 예비력을 충분히 갖추지 못한 상태”라며 “화력발전이 재생에너지 발전의 불안정성을 보완해주는 역할을 하고 있다”고 말했다.

제주도 서귀포시 안덕면에 위치한 ‘남제주화력발전소’의 모습이다. 남제주화력발전소 내부에 위치한 복합화력발전소(LNG)는 제주가 탄소없는섬 정책을 선언한 2012년 이후에 준공됐다. 권도현 기자

제주도 서귀포시 안덕면에 위치한 ‘남제주화력발전소’의 모습이다. 남제주화력발전소 내부에 위치한 복합화력발전소(LNG)는 제주가 탄소없는섬 정책을 선언한 2012년 이후에 준공됐다. 권도현 기자

하지만 이런 주장에는 이견도 있다. 김승완 충남대 전기공학과 교수는 “그 당시 기술로는 (전력 수급에 대처하기 위해) LNG가 필요했다는 것에는 동의한다”면서도 “하지만 화력발전이 아닌 다른 대안을 찾으려는 노력이 충분했는지는 의문”이라고 했다. “LNG 발전소를 착공하기 전에 이미 CFI 정책이 있었고, 온실가스 감축 계획도 있었는데, 그냥 (이전처럼 화력발전원을 추가하는) 관습대로 한 거죠.” 윤형석 제주도청 미래전략국장 역시 “(사실) 대규모 LNG 발전원이 들어온 것은 제주의 CFI 정책과 일부 상충되는 부분이 있다”고 했다. 다만 그는 “현재는 (기술적 한계로) LNG와의 공존을 고민해야 하는 상황이니만큼, 기술적 보완장치를 도입해 재생에너지를 더 확보하고, 화력발전의 발전량은 줄여나가려 한다”고 말했다.

제주에서 많이 사용되는 발전 연료 중에는 바이오중유도 있다. 제주에서 가장 큰 규모의 발전설비를 갖춘 제주화력발전소는 2019년에 2, 3호 발전기의 연료를 중유에서 바이오중유로 전환했다. 남제주화력발전소 또한 2014년, 2019년에 걸쳐 1, 2호 발전기의 연료를 바이오중유로 바꿨다. 바이오중유는 동식물성 유지를 활용해 만드는 연료다. 전량이 수입되는 바이오중유는 환경부의 녹색분류체계에 따라 신재생에너지에 포함된다. 바이오중유를 포함하면 이미 제주 발전원에서 신재생에너지가 차지하는 비율은 50%가 넘는다. 문제는 바이오중유의 원료인 식물성 오일 팜유를 만드는 과정이다. 인도네시아 등에서 주로 생산되는 팜유는 대규모 산림벌채 등 환경파괴 문제를 유발해 재생에너지로 보기 어렵다는 비판을 받는다. 환경단체에 따르면 국내 바이오중유의 75%는 제주에서 사용되고 있다. 김정도 제주환경운동연합 정책국장은 “바이오중유는 오래된 화력발전을 유지하는 역할을 할뿐더러 제주도 내 태양광, 풍력과 같은 재생에너지 발전 확대에 걸림돌이 되고 있다”고 했다.

지난 10년간 제주에서 재생에너지가 빠른 속도로 늘어나면서 제주 화력발전소에서 나오는 탄소배출량도 2011년 180만3000t에서 2020년 76만5000t으로 줄어들었다. 하지만 ‘탄소 배출 없는 섬’을 달성하겠다던 선언과 달리 10년 새 대규모 LNG 발전소를 새로 지었고, 오래된 화력발전소는 연료를 바이오중유로 교체해 계속 사용했다. 기존 전력 계통 위에 재생에너지를 덧씌워가는 제주의 모습, 과연 지속 가능한 방향일까.

제주 지역에 위치한 발전소들을 색으로 나눠 점으로  표시했다. 노란색 태양광 발전, 파란색은 풍력발전, 빨간색은 화력발전, 초록색은 육지와 연계된 해저케이블이다. 제주는 탄소없는섬 정책을 이행하는 10년 동안 재생에너지 보급을 빠르게 늘려왔다 .다만 이 과정에서 대규모 액화천연가스(LNG) 발전소도 증설했다. 사진 크게보기

제주 지역에 위치한 발전소들을 색으로 나눠 점으로 표시했다. 노란색 태양광 발전, 파란색은 풍력발전, 빨간색은 화력발전, 초록색은 육지와 연계된 해저케이블이다. 제주는 탄소없는섬 정책을 이행하는 10년 동안 재생에너지 보급을 빠르게 늘려왔다 .다만 이 과정에서 대규모 액화천연가스(LNG) 발전소도 증설했다.

[탄소중립 제주, 미리 가 본 미래①]카본프리아일랜드의 카본발전소들

■깨끗하지만 통제가 어려운 재생에너지

“‘CFI 제주’를 실현하려면 사실 전력 계통 전체를 바꿔야 하는데, 사람들은 그냥 재생에너지만 (많이) 보급하면 된다고 생각했던 거예요. 한 번 계획을 잘못 짜면 진짜 바꾸기가 힘들더라고요. 제주는 지금 어려운 상황에 있어요.” 전영환 홍익대 전기공학부 교수가 말했다. 그는 제주 CFI 정책에 자문을 하기도 한 전기 전문가다. 제주는 현재 국제에너지기구(IEA)가 분류한 재생에너지 보급 총 6단계 가운데 3단계 정도로 평가받는다. 재생에너지 선진국 수준의 보급률이다. 그런데도 전 교수가 제주의 현 상황을 ‘어렵다’고 한 이유는 무엇일까. 기존 전력구조를 그대로 유지한 채 단순히 재생에너지만 늘려왔던 제주 전력체계의 문제가 점점 나타나고 있기 때문이다.

대표적인 것이 재생에너지 발전을 인위적으로 제한하는 ‘출력제한’이다. 전력공급이 일시적으로 넘칠 경우 일정 수준 이상 발전하지 못하도록 제약하는 것이다. 이렇게 하는 이유는 공급이 너무 많아도, 적어도 안 되는 전력의 특성 때문이다. 정전은 전력을 필요한 것보다 적게 공급해도 발생하지만, 필요한 것보다 지나치게 많이 공급해도 발생한다. 송배전망에 과부하가 걸리기 때문이다.

그래서 전력거래소는 매일 필요한 발전량을 예측해 수요와 공급을 조절한다. 그런데 재생에너지의 연료인 바람과 햇빛은 인간이 통제할 수 없어 발전량을 예측하기 어렵다. 어떤 날은 날씨가 좋아 필요한 것보다 많은 전력이 생산되는가 하면, 어떤 날은 흐려 필요한 것보다 적은 전력이 생산된다. 석탄과 LNG 발전이 ‘안 깨끗하지만 통제하기 쉽다’면, 재생에너지는 아직까지는 ‘깨끗하지만 통제가 어려운’ 에너지다.

출력제한은 주로 풍력발전에 시행되고 있다. 지난해 제주도는 풍력발전에 대해 무려 63회의 출력제한을 시행했다. 다른 발전원도 많은데 하필 재생에너지인 풍력에 출력제한을 하는 이유는 화력발전보다 끄고 켜기가 쉽기 때문이다. 넘치는 전력을 저장해놨다가 필요할 때 찾아 쓸 수 있으면 좋겠지만, 아직 기술적 한계가 있다. 에너지저장장치(ESS)는 이제 막 상용화 단계를 밟기 시작했다. 산업통상자원부는 올해부터 제주에 대규모 ESS 장치를 설치할 예정이다. 다만 이미 넘쳐버린 제주의 전력 공급량을 모두 수용하기에는 ESS의 용량이 충분치 않다.

2015년 단 3회였던 출력제한은 7년 새 20배 넘게 증가했다. 지난해 출력제한으로 발전하지 못한 전력은 총 11.9GWh. 이로 인해 풍력발전사업자들이 입은 손해는 21억5000만원에 달하는 것으로 추정된다. 이런 손해에 대한 보상은 아직 없다. 제주에서 풍력발전 사업을 하고 있는 A씨는 “출력제한 때문에 재무모델이 깨지고 있다”며 “장기화되면 파산”이라고 말했다. 김승완 교수는 “출력제한의 문제는 재생에너지 사업의 리스크를 키운다는 것”이라며 “손해를 입는 것 자체도 문제지만, 1년 동안 날 손해가 얼마인지 알 수 없다는 게 진짜 문제”라고 했다. A씨는 “지금의 전력시스템이 바뀌지 않는다면, 머지않아 육지에서도 제주와 같은 일들이 발생할 것”이라고 말했다. 육지의 에너지 전환은 어떻게 진행되고 있을까?

경남 고성군 하이면에 나란히 위치한 고성하이 발전소의 옥내 저탄장(왼쪽)과 일부 호기가 폐쇄된 삼천포화력발전소. 고성하이는 지난해 4월 가동을 시작한 신규 석탄 발전소다. 강윤중 기자

경남 고성군 하이면에 나란히 위치한 고성하이 발전소의 옥내 저탄장(왼쪽)과 일부 호기가 폐쇄된 삼천포화력발전소. 고성하이는 지난해 4월 가동을 시작한 신규 석탄 발전소다. 강윤중 기자

■탄소중립 한다면서 석탄발전소 짓는 육지

“점심 돼요?” “장사 안 해요.” 경남 고성군 하이면 신덕마을의 오후. 평일의 점심시간인데도 거리엔 사람이 거의 없었다. 꽤 커 보이는 식당에 들어갔지만 영업은 하지 않는다. 대형 화물차들이 5분에 한 번씩 굉음을 내며 비포장도로를 훑고 지나가는 탓에, 먼지로 앞이 뿌옇다. 먼지 사이로 유독 말끔한 대형 표지판이 눈에 띄었다. ‘고성그린파워. 2㎞ →.’ 표지판 바로 옆에는 마을 개발위원회가 건 검은 현수막이 걸려 있다. ‘친환경 석탄발전소라고 쓰고, 유독가스 저탄장(석탄 저장소)이라고 읽는다!’ 신덕마을은 지난해 4월 가동을 시작한 신규 석탄발전소인 고성하이 1, 2호기와 붙어 있다.

제주와 비교했을 때 육지의 에너지 전환은 아직 초기 단계다. 전체 발전량에서 신재생에너지가 차지하는 비중은 약 6%(2020년 기준)뿐이다. 지난해 3월 전남 신안에서 처음으로 태양광 출력제한이 있긴 했지만, 아직 제주만큼 출력제한 문제를 본격적으로 고민하고 있는 상황은 아니다. 육지의 문제는 재생에너지 보급은 더딘데, LNG도 아닌 석탄발전소가 새로 지어지고 있다는 것이다. 재생에너지 발전 비중이 제주의 3분의 1가량뿐인 육지에는 7기의 새 석탄발전소들이 최근 가동을 시작했거나 2~3년 안에 들어설 예정이다. 고성하이도 그중 하나다.

“저기 보이는 건 고성하이가 아니라 삼천포화력발전소예요.” 신덕마을 이장 이은호씨가 말했다. 하이면에는 1990년대 지어진 삼천포석탄화력발전소가 있다. 2020년에 가동연한이 끝난 1, 2호기만 폐쇄되고 나머지 4개 발전기는 그대로 돌아가고 있다. “그래도 삼천포발전소는 마을이랑 2㎞쯤 떨어져 있어서 괜찮았어요. 고성하이는 제일 가까운 민가랑 400m밖에 안 떨어져 있어요.” 마을회관에서 도보로 10여분쯤 걸어 완만한 언덕을 넘자 고성하이의 대형 옥내 저탄장이 보였다. 석탄을 대량으로 저장해 두는 옥내 저탄장에선 종종 자연발화가 발생한다. “보통 굴뚝에서 나오는 연기만 걱정하잖아요. 저희는 자연발화 때 나오는 가스가 마을로 그대로 흘러들어와요. 한 번 냄새나기 시작하면 이틀은 가거든요. 사람이 가스 냄새 한 번 맡아보면 생각이 완전 달라지지 싶은데. 진짜로 ‘여기서 살 수 있을까, 이거 한 1주일 맡으면 죽을 것 같은데’ 하는 거죠. 저희는 진짜 근본적인 문제에 처해 있어요.” 가스 냄새가 난 다음날이면 마을 주민들은 메스꺼움과 어지러움, 구토 등의 증상을 호소했다. 이은호씨는 주민 수십명과 함께 보건소에서 집단 진료도 받았다.

경남 고성군 하이면 덕명마을의 전경. 마을 바로 옆에 고성하이가 가동을 시작한 뒤 주민들은 소음 등의 피해를 호소하고 있다. 강윤중 기자

경남 고성군 하이면 덕명마을의 전경. 마을 바로 옆에 고성하이가 가동을 시작한 뒤 주민들은 소음 등의 피해를 호소하고 있다. 강윤중 기자

신덕마을에서 차로 10분. 얕은 산 하나를 끼고 돌면 덕명마을이 나온다. 고성하이는 두 마을 사이에 있다. 덕명마을에 들어서자 마을회관 뒤의 산 정상 부근에 비쭉 솟아오른 발전소 굴뚝이 보였다. “새벽에 시장 간다고 5시30분 차 타거든. 그럼 (굴뚝에서 나오는 연기가) 뭉게구름 같아, 뭉게구름. 아휴, 말도 못해. 이 시골에 예전에는 흙먼지가 있었거든. 요새는 흙먼지가 아니라, 시꺼먼 (석탄)먼지야.” 주민 박납점씨가 말했다. 옆에 있던 덕명마을 이장 정금주씨가 회관 옆 과일나무를 가리켰다. “이제 유자, 감도 안 따먹습니다.” “석탄 가루 날아온다고 안 따먹지. 나쁜 게 자꾸 날아오니까 몇년 전부터 고추농사도 잘 안 된다.” “따다 팔기도 하고 먹고 그랬는데 이제 아예 손도 안 댑니다.” 주민들이 너도나도 말을 보탰다.

주민들을 힘들게 하는 또 다른 큰 문제는 발전소에서 들리는 소음이다. “저녁마다 소리가 나 못 살겠다. 한 7시 넘으면 매일 ‘우웅, 우웅’ 그런다. 소리가 너무 커.” 주민 문둘례씨가 말했다. “처음에는 이게 무슨 소리인가, 밖에서 뭘 하는가 싶어서 내가 밤에 밖에 몇 번 나가봤어. 그런데 아무것도 안 해. 발전소 생각을 못했지.” 소음은 매일 저녁 3~4시간씩 지속되고, 바람이라도 부는 날에는 더 크게 들린다. 정씨는 “굴뚝이 워낙 크니까 야간에도 ‘푹푹푹푹’ 소리가 난다”고 했다.

수십 년간 삼천포화력발전소 옆에서 산 정씨는 ‘탄소중립’을 한다면서 왜 또 새로운 석탄발전소가 마을 앞에 들어서야 했는지, 이해가 가지 않는다고 했다. “삼천포화력발전소도 1, 2호기만 폐쇄하고 나머지는 돌아가거든요. 그거까지는 이해가 가요. 그런데 이제 뭐 탄소중립이라는 게 되어가지고 다른 대체에너지를 한다고 하던데. 그런데 바로 앞에 석탄발전소가 또 하나 생긴 거예요. 그러니까 또 30년 동안 우리는 이렇게 피해를 보고 살아야 하니….” 고성하이 1, 2호기의 용량은 2080㎿, 현재 가동 중인 삼천포화력 3~6호기의 용량 2120㎿와 맞먹는다.

[탄소중립 제주, 미리 가 본 미래①]카본프리아일랜드의 카본발전소들

■에너지 덧셈만큼 중요한 화석연료 뺄셈

에너지 전환에는 크게 두 가지 방법이 있다. 하나는 석탄에서 재생에너지로 발전원을 바꾸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이미 있는 석탄발전소들을 ‘신속하고 체계적으로’ 퇴출시키는 것이다. 정부는 재생에너지의 비중을 2030년까지 30.2%, 탄소중립 달성연도인 2050년에는 60.9~70.8%로 목표를 잡고 있다. 2030년에도 석탄발전은 여전히 국내 전력원의 21.3%를 차지한다. 2034년까지 폐쇄되는 석탄발전소들 중 90% 이상은 LNG 발전소로 대체된다. ‘가교’로서의 LNG 역할을 넘어 신규 LNG 발전소와 새 석탄발전소들을 만드는 것은 에너지 전환의 방향과 맞지 않다. 국제적 흐름과도 배치된다. 재생에너지에 대해 보수적인 기관인 국제에너지기구(IEA)도 기후위기로 인한 심각한 영향을 막기 위해 선진국들은 적어도 2035년까지는 가스를 포함한 ‘탈화석연료’를 해야 한다고 밝힌 바 있다. 권우현 환경운동연합 에너지기후국 활동가는 “한국의 화석연료 퇴출속도는 굉장히 느린 편”이라고 지적했다.

더구나 고성하이와 신서천화력이 약 10년 전부터 공사가 시작돼 이미 거의 완공을 앞두고 있었던 사정이 있었다면, 강원도에 한창 공사가 진행 중인 석탄발전소들은 그렇지도 않다. 강릉의 안인석탄화력 1, 2호기와 삼척석탄화력 1, 2호기는 불과 3년여 전인 2018년 공사가 시작됐고, 내년이면 1호기가 완공된다. 두 발전소가 착공을 한 때는 석탄발전을 둘러싼 국내외 상황이 빠르게 변하던 때였다. 기후위기 상황이 악화되며 단위 열량당 가장 많은 탄소를 배출하는 연료인 석탄 퇴출 움직임이 가속화됐다. 전 세계 금융사들이 석탄에 대한 투자를 철회하거나 중단했다. 한국도 2020년 대통령이 탄소중립을 선언한 뒤 석탄에 대한 공적금융 지원과 신규 석탄발전소 건설은 중단됐다. 이 모든 변화의 와중에도, 이미 허가가 난 신규 발전소들에 대한 공사는 계속 진행됐다. 이미 승인된 사업을 중단시키거나, 그에 따른 손해를 보상할 마땅한 법적 근거가 없기 때문이다. 환경단체들은 지금이라도 공사를 중단해야 한다고 요구하고 있지만 정부 부처와 국회 모두, ‘이미 승인된 사업’에 대해서는 적극적으로 이야기하지 않고 있다.

제주특별자치도 서귀포시 표선면에 위치한 가시리 국산화 풍력발전단지의 모습이다. 풍력발전단지 주변에는 태양광 발전설비도 함께 들어서 있다. 권도현 기자

제주특별자치도 서귀포시 표선면에 위치한 가시리 국산화 풍력발전단지의 모습이다. 풍력발전단지 주변에는 태양광 발전설비도 함께 들어서 있다. 권도현 기자

■핵심은 화력발전의 ‘질서 있는 퇴장’

제주의 에너지 전환이 육지에 시사하는 바는 명확하다. 화석연료 기반으로 짜인 기존 전력 계통을 계속 유지한 채 재생에너지를 늘리는 것은 한계가 분명하다는 것이다. 권 활동가는 “대형 발전소들을 활용하면서 재생에너지를 늘리는 게 일정 시점부터 어렵다는 건 2019년에 만들어진 정부의 3차 에너지기본계획에서도 드러나는데, 재생에너지 비중이 35%를 넘어서면 화력·원자력발전 등 기존의 경직된 발전원과의 조화가 어려워진다”며 “기본적으로 전력 시스템을 재생에너지 중심으로 바꿔야만 재생에너지를 더 늘릴 수 있다”고 말했다.

일각에서는 재생에너지의 발전량이 불안정하다며 원자력발전소를 대안으로 든다. 발전 효율도 좋고, 탄소배출량도 낮다는 이유에서다. 하지만 원전은 에너지 전환의 열쇠가 될 수 없다. 원전의 위험성과 폐기에 드는 경제·사회적 비용 등은 차치하고라도, 원전은 재생에너지의 유연성에 대응하기 어려운 경직된 발전원이기 때문이다. 전력 수요에 맞춰 실시간으로 가동을 중단하거나 발전량을 줄이기 어렵다는 것이다. 석광훈 에너지전환포럼 전문위원은 “재생에너지의 증가와 원전처럼 경직된 전력원의 공존은 사실상 불가능하다”고 말했다.

결국 에너지 전환의 핵심은 화력발전의 ‘질서 있는 마이너스(퇴장)’다. 이를 위해서는 조기 퇴출하는 화력발전소에 대한 법적 근거와 보상책이 마련돼야 한다. 재생에너지가 ‘불안정하다’는 꼬리표를 떼는 것도 급선무다. 정부는 ESS 설비를 보급해 재생에너지의 안정성을 확보하는 것만 아니라 새 에너지원인 ‘수소’를 도입해 출력제한 문제를 해결할 계획이다. 남는 전력을 활용해 수소를 만들거나, 이 전력을 열로 변환해 냉난방 등에 활용하겠다는 것이다. 다만 이것도 근본적인 대안은 아니다. 이헌석 정의당 녹색정의위원회 위원장은 “아직도 정부는 수소 등 새로운 에너지원을 추가하는 데 주력하고 있는데, 이 경우 사용하는 에너지 총량과 함께 온실가스 배출량도 늘어날 우려가 있다”며 “에너지 전환을 위해 화력발전원을 어떻게 빼고, 무엇을 넣어야 할지에 대한 구체적인 계획이 선행돼야 한다”고 말했다.

재생에너지 중심의 전력시장을 조성하기 위해 늘어나는 전력소비량을 어떻게 관리할지도 함께 고민해야 한다. 이전까지는 늘어나는 전력 소비에 따라 전력 공급량을 늘려왔다면, 이제는 소비가 변화하는 전력 공급량에 맞춰질 필요가 있다는 것이다. 전영환 교수는 “전력의 공급과 소비 부문에서 효율을 높이기 위해서는 (지금보다 인상된) 투명한 전기요금정책이 필요하다”며 “재생에너지를 효율적으로 운영하기 위한 시스템 개선을 위해서도 전기요금제도를 비롯한 기존 전력시장제도의 개선은 매우 중요하다”고 말했다.

<특별취재팀>

강윤중, 강연주, 권도현, 김한솔, 박미라, 박은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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