처벌 원해도 말 못하는 가정폭력···현실 동떨어진 ‘가정보호사건’ 제도

문광호 기자
경향신문 자료사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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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찰은 지난 5일 아내 A씨의 손목을 잡아서 비튼 혐의로 입건된 이정훈 강동구청장의 폭행 사건을 ‘가정보호사건’ 의견으로 검찰에 송치했다. 가정보호사건으로 분류되면 가해자는 접근제한, 보호관찰, 사회봉사 등 처분을 받는다. 형사사건과 달리 가정법원으로 관할이 정해져 전과도 남지 않는다. 이 구청장은 지난해 7월에도 주먹으로 A씨의 얼굴을 때려 다치게 한 전력이 있는 재범이지만 선처를 받았다. 형사처벌 여부를 고심해온 경찰은 A씨가 처벌불원서를 제출한 점을 감안했다고 밝혔다.

여성단체들은 피해자의 처벌불원서 제출이 가해자의 형사처벌 여부를 결정짓는 건 문제라고 지적한다. 한윤정 한국여성의전화 활동가는 15일 “가정 안에서 발생하는 폭력은 신고를 하면 보복부터 걱정해야 하고 벌금이 부여돼도 경제공동체라 벌금이 피해자 몫으로 돌아오기도 한다”며 “남편이자 아이들 아버지의 처벌을 원한다는 것에 대한 사회적 비난도 무시할 수 없다”고 말했다. 처벌을 원해도 처벌을 해달라고 말할 수 없는 현실을 반영하지 못한 조치라는 것이다.

피해자들은 수사기관이나 법원 조사 과정에서 가정폭력이 가정사의 일부로 치부되는 경험을 한다. 한국여성의전화 여성인권상담소에 따르면 가정폭력으로 도움을 요청한 피해자에게 경찰이 “별것도 아닌 일로 그런다”거나 “남편 기분을 상하게 하지 마세요”라고 발언하는 사례가 적지 않았다. 법원 가사조사관이 가해자를 두려워하는 피해자에게 부부상담을 강요하는 등 2차 가해를 한 사례가 보고되기도 했다.

그러는 사이 가정폭력 재범률은 높아지고 있다. 송기헌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법무부에서 제출받은 자료에 따르면 가정폭력사범의 재범률은 2016년 7.9%에서 2020년 12.6%로 증가했다. 온라인상에는 가해자의 재범으로 인해 처벌불원서 제출로 가정보호사건이 된 가정폭력을 다시 형사사건으로 넘길 수 있는지 질문하는 사례도 적지 않다. 한 가사전문 변호사는 “가정폭력 초범은 아무리 폭력을 한다고 해도 가정보호사건으로 넘어가는 경우가 많다”며 “가해자의 재범으로 다시 형사사건으로 바꿀 수 있는지 묻는 사례들도 많지만 현실적으로 다시 형사사건으로 바꾸기는 어렵다”고 말했다.

여성단체들은 가정폭력처벌법에 규정된 ‘피해자 의사 존중’ 조항을 삭제해야 한다고 지적한다. ‘가정의 평화와 안정’에 초점을 맞춰 1997년 제정된 가정폭력처벌법을 개정해야 한다는 것이다. 심연우 가정폭력당사자네트워크 대표는 “가정폭력처벌법의 가정보호라는 목적 조항과 경찰의 가정보호사건 송치 관행이 형사처벌법에 구멍을 뚫었다”고 말했다. 한윤정 활동가도 “가정폭력처벌법에서 피해자 의사 존중 관련 내용을 삭제하고 가정폭력에 대한 가중처벌제도를 별도로 마련해야 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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