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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시오패스는 절대로 바뀌지 않는다"

송고시간2020-06-18 11: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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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사 스타우트 하버드대 교수 '이토록 친밀한 배신자' 번역 출간

(서울=연합뉴스) 추왕훈 기자 = 범죄 드라마 등을 통해 '소시오패스(sociopath)'라는 말은 일반인들에게도 익숙한 용어가 됐다. 많은 사람이 이 말을 들을 때 냉혹한 살인자를 떠올리는 경우가 많겠지만 소시오패스의 사례를 깊이 연구해온 마사 스타우트 하버드대 의과대 교수는 소시오패스가 반드시 살인자는 아니며 모든 살인자가 소시오패스인 것도 아니라고 지적한다.

'이토록 친밀한 배신자'(원제 The Sociopath Next Door·사계절)는 스타우트 교수가 정신과 교수로서 상담한 사례들과 다양한 기존 연구 결과를 종합해 소시오패스의 정체를 파헤친 책이다. 그에 따르면 '반사회적 인격장애자'라는 전문용어로 부르는 소시오패스는 한마디로 양심이 없는 사람을 의미한다. 양심이 있고 없고는 '정도'의 문제가 아니냐고 생각하기 쉽지만, 소시오패스는 어떤 이유로 보통 사람이 가진 양심의 작동 기제가 상실된 사람이고 이런 기질은 교정이 불가능하다. 전체 인구의 약 4%가 이에 해당한다고 한다.

영화 '조커'
영화 '조커'

영화나 드라마에서 소시오패스는 냉혹한 살인자로 묘사되는 경우가 많지만, 소시오패스가 반드시 살인자는 아니며 모든 살인자가 소시오패스도 아니다 [워너브라더스코리아 제공·재판매 및 DB 금지]

저자는 이 책에서 자신의 상담 사례를 바탕으로 소시오패스의 다양한 유형을 설명한다. 똑똑하고 잘생긴 스킵은 어릴 때 작은 폭죽을 황소개구리 입속에 넣고 폭발시키는 장면을 보면서 희열을 느낄 정도로 잔인하지만 매력적인 데다 사람을 조종하는 능력이 탁월해 비즈니스 세계에서 대단한 성공을 거둔다. 도린은 동료, 특히 뭔가 자신보다 뛰어난 사람들을 곤경에 빠트리는 데서 즐거움을 찾고 이를 위해서는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는다. 무위도식하는 루크에게 부인은 생활의 방편을 제공하는 수단일 뿐이다. 가족에게 아무런 관심도 없지만, 이혼하고 집에서 쫓겨나게 되자 눈물을 흘려 자식의 동정을 유발하는 재주는 있다. 한나의 아버지는 지역사회의 존경을 받는 고등학교 교장이자 자랑할 만한 처자식을 둔 가장이라는 겉모습 뒤에 마약에 손을 대고 딸 나이의 제자와 성관계를 가진 것으로도 모자라 살인까지 하는 악마적 본성을 감추고 있었다. 70세 노부인 틸리는 나이답지 않게 사소한 일로 이웃과 불화를 일으키고 앙심을 품으면 끝까지 복수하는 것이 장기다.

이처럼 소시오패스들의 속성과 살아가는 모습은 다양하지만, 확실한 공통점은 양심이 없다는 것이다. 저자는 양심을 '타인에 대한 애착을 바탕으로 하는 의무감'이라고 정의한다. 양심이 없다는 것은 죄의식과 가책이 없음은 물론이고 계산을 거치지 않은 진정한 감정을 경험한다거나 그 가치를 이해하는 진정한 관계 속에서 다른 사람들과 연결되는 능력 역시 없음을 의미한다. 사람들은 대부분 양심을 타고나기 때문에 소시오패스들의 행동을 이해하지 못하고 "설마 그러겠어"라고 이들의 악행을 믿지 못하거나 선의로 해석하는 경우가 많다. 이것이 소시오패스를 대할 때 맞닥뜨리게 되는 함정이고 소시오패스는 이를 적극적으로 활용한다.

그렇다면 왜, 어떻게 소시오패스가 될까. 저자는 쌍둥이 분석 등 여러 연구 결과를 인용해 소시오패시(sociopathy), 즉 소시오패스가 갖는 속성의 절반 정도는 유전에 의한 것이라고 설명한다. 뇌의 전기적 활동 수치를 비교 연구한 결과 보통 사람들은 '사랑'과 같은 감정적인 낱말에 그렇지 않은 낱말보다 빨리 반응했다. 그러나 소시오패스들은 이를테면 '사랑'과 '사탕'에 반응하는 시간에 차이가 없었다. 이는 소시오패시가 대뇌피질 수준에서 감정적인 자극을 처리하는 기능에 변형이 생긴 것과 관련이 있음을 시사한다.

소시오패스에 미치는 사회적 요인은 이보다 분명하지 않다. 유년기에 학대를 당했을 경우 범죄를 저지를 가능성이 커지지만, 소시오패스는 유년기 경험과 관계없이 '자체적인 시간표'에 따라 범죄 성향이 스스로 발현한다고 저자는 설명한다. 애착장애를 가진 사람도 소시오패스와 유사한 모습을 보일 수 있지만, 이들은 대개 매력적이거나 대인관계가 능수능란하지 않다는 점에서 소시오패스와는 다르다. 나르시시즘은 '반쪽 소시오패시'라고 할 수 있으나 죄의식과 슬픔은 물론 절실한 사랑과 열정에 이르는 대부분의 감정에는 장애를 초래하지 않는다는 차이가 있다.

환경 요인 가운데는 양육보다는 오히려 문화적 특성이 더 큰 영향을 미치는 것으로 보인다. 어느 시대, 어느 장소건 소시오패스는 늘 있었겠지만, 상대적으로 소시오패스가 많지 않은 문화가 분명히 존재한다. 대만의 도시와 농촌 지역에서 실시한 연구에 따르면 이곳의 반사회적 성격장애 유병률은 0.03~0.14%로 세계 평균 4%에 비해 매우 낮았다. 반대로 1991년 발표된 연구에서 미국의 유병률은 15년 사이 두 배로 증가한 것으로 나타났다. 저자는 동아시아 등 일부 문화권에서 소시오패스의 비율이 낮은 것에 관해 "그 문화의 지배적인 신념 체계가 소시오패스들이 감정적으로 결핍된 부분을 인지적으로 보완하도록 했을 것"이라고 풀이한다. 다른 사람과 유대감을 느끼는 기능을 상실한 소시오패스라 하더라도 개인을 넘어서는 문화가 끊임없이 유대감을 상기시킨다면 반사회적 행동을 어느 정도 억제할 수 있을 것이라는 이야기다. 다른 한편으로 소시오패스가 지니는 속성이 도움이 되는 환경도 있다. 잔인함이 오히려 덕성이 되거나 사람들을 조종해 목적을 성취하는 것이 바람직하게 받아들여지는 전쟁이나 비즈니스 같은 경우다.

이처럼 소시오패스는 절대로 교정될 수 없고, 더구나 우리가 평생 최소 몇 차례는 마주칠 정도로 흔하다면 이들에게 속거나 해를 입지 않도록 하기 위해서는 어떻게 해야 할까. 저자는 '일상에서 소시오패스에 대처하는 13가지 규칙'으로 이를 정리한다. 그중 첫째는 '아무리 싫더라도 양심이 결핍된 사람들이 존재한다는 사실을 반드시 받아들일 것'이다. 두 번째는 '교육자, 이사, 지도자, 동물애호가, 인도주의자와 같은 사람들, 심지어 부모라 해도 어떤 사람이 맡은 역할에 기대되는 바와 당신의 직감이 상반될 때는 당신의 직감을 따를 것'이다. '타이틀'에 딸린 권위를 활용해 타인을 복종시키는 것이 사이코패스의 전형적 수법 가운데 하나다.

또 '세 번은 속지 말라'는 규칙도 있다. 기만은 양심 없는 행동의 핵심이며 한두 번은 실수이거나 오해일 수 있으나 세 번의 거짓말은 그 사람이 거짓말쟁이라는 뜻이다. '게임에 동참하지 말라'는 규칙은 매혹적인 소시오패스와 경쟁하고 싶은 유혹, 잔꾀로 그를 이기거나 정신을 분석하거나 혹은 그와 즐기려는 유혹에 절대 빠지지 말라는 뜻이다. 이밖에 '소시오패스와는 어떤 종류의 접촉이나 연락도 하지 말라', '너무 쉽게 동정하지 말라', '구제할 수 없는 사람을 구제하려고 애쓰지 말라' 등이 13가지 규칙에 포함된다.

저자는 서문에서 "양심의 존재 여부는 인간을 분류하는 근본적인 기준 중 하나이며 지능이나 인종, 심지어 성별보다 더 중요하다고 생각한다"고 썼다. 이런 관점을 뒷받침하기 위해 본문의 여러 사례와 연구 결과들을 들고나온다. 나름대로 근거가 있고 상당히 설득력이 있다. 그러나 책을 다 읽은 뒤에도 이 세상 사람들을 '양심이 있는 사람'과 '양심이 없는 사람'으로 양분하는 것이 가능한지에 관해서는 여전히 의문이 남는다.

이원천 옮김. 356쪽. 1만6천800원.

"소시오패스는 절대로 바뀌지 않는다" - 2

cwhyna@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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