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프로TV'는 어떻게 지난 대선 손석희의 자리를 대체했나

칼럼니스트 위근우

나라를 구했다는 ‘삼프로TV’ 인기가 말하는 것

현재 가장 유력한 대선 후보의 경제 정책 인터뷰로 연일 화제를 모으고 있는 ‘삼프로TV’는 2019년부터 증권사 임원 출신 김동환, 경제전문 이진우 기자, 방송인 정영진이 운영하고 있는 경제 및 주식 유튜브 채널이다. 삼프로TV 화면 캡처

현재 가장 유력한 대선 후보의 경제 정책 인터뷰로 연일 화제를 모으고 있는 ‘삼프로TV’는 2019년부터 증권사 임원 출신 김동환, 경제전문 이진우 기자, 방송인 정영진이 운영하고 있는 경제 및 주식 유튜브 채널이다. 삼프로TV 화면 캡처

‘삼프로TV가 나라를 구했다.’ 경제 및 주식 유튜브 채널 ‘삼프로TV’를 검색하기 위해 구글에 ‘삼프로’까지만 입력하면 자동 완성되는 문장이다. 에두를 것 없다. 지난 12월25일 ‘삼프로TV’는 현재 가장 유력한 두 대선 후보인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후보, 윤석열 국민의힘 후보와 각각 진행한 경제 정책 인터뷰를 공개했고, 현재(12월28일 기준) 이재명 후보의 영상은 조회 수 274만회, 윤석열 후보 영상은 175만회를 기록했다. 조회 수도 이재명 후보 쪽이 높았지만 정책 이해나 설명에 있어서도 윤석열 측의 패배였다. 좀 더 정확히 말해 그의 발언은 구체적인 적이 단 한순간도 없었다. 1시간30분여의 러닝타임 내내 강의 흐름을 거스르지 않아야 한다는 식의 비유만 남발하며 경제 정책인지 토목 정책인지 알 수 없는 두루뭉술한 말만 남겼다. ‘삼프로TV가 나라를 구했다’는 말은 저토록 준비되지 않은 후보에게 투표하거나 대통령이 되는 것에 무관심할 뻔했던 걸 바로잡아줬다는 의미다. 즉 이번 방송의 화제성은 방송 자체의 완성도 이상으로 윤석열이라는 유력 후보의 준비 부족을 선명한 해상도로 비춰냈다는 점에 있다.

정말로 윤석열이 대통령이 되는 것이 나라가 망할 일인지, 또 정말 ‘삼프로TV’가 이번 대선의 가장 중요한 변수가 될지는 아직 알 수 없다. 다만 확실한 건, 이미 많은 언론이 윤석열의 다양한 실언을 전했음에도 이번 ‘삼프로TV’에 이르러서야 유의미한 수준의 반응이 나오고 있다는 것이다. 이것은 팟캐스트의 영향력이 컸던 지난 두 번의 대선에 이어 또다시 레거시 미디어에 대한 뉴 미디어의 승리를 선포하는 사건인 걸까. 그렇기도 아니기도 하다.

기존 대선 토론은 나열식 질의응답
시간제한에 철학의 깊이 구분 한계
토론 형식 문제로 ‘TV 외면’ 불러

‘삼프로TV’ 진행자 겸 공동대표인 이진우 기자는 ‘미디어오늘’ 인터뷰에서 “실제 앞서 토론이라고 하는 걸 보면, 질문을 하나 던지면 답변이 하나 나오고, 다른 질문으로 넘어간다. 나열식의 질의응답은 철학의 깊이가 있는 후보와 단기 공부한 후보를 구별하기 어렵게 만든다. 제대로 된 토론을 하려면 하나의 질문을 던지고 답변이 나오면 그 답변에 대한 재질문, 재답변, 재재질문, 재재답변을 통해 끝을 봐야 한다”며 이번 방송의 화제성에 대해 설명하는 동시에 기존 대선 후보 토론 형식에 대해 비판했다.

사실이다. 많은 이들이 이번 영상을 보고 왜 윤석열이 TV토론에 불응하는지 알겠다고 말하지만, 단언컨대 TV토론으로는 절대 이번 같은 뜨거운 반응이 나올 수 없었을 것이다. TV가 몰락하는 매체라서가 아니다. 그보단 형식의 문제다. 전통적인 TV토론에선 발언 시간제한을 통해 한 후보가 발언을 독점하는 것을 막고, 준비된 의제 모두를 다룰 시간을 확보한다. 설명하거나 해명할 게 많은 쪽에선 답답할 수 있지만, 반대로 콘텐츠가 부족한 쪽에선 자극적이고 직관적인 몇 마디만으로 마치 비전을 제시하는 듯한 착시를 만들 수 있다. 대립적 구도의 논쟁도 마찬가지다. 논리가 부족하더라도 상대방에 순응하지 않는 강한 반발만으로도 지지 않았다는 착시가 만들어진다. 다시 말해 TV토론에서 윤석열 후보가 다른 후보들보다 언변과 논리가 부족해도 대충 수사적 구호를 반복하고 상대 후보와 감정적으로 대립하는 것만으로도 지금만큼 부정적 여론이 나오진 않을 것이다. ‘삼프로TV’ 대선 후보 특집이 화제가 된 건, 그런 꼼수가 훤히 드러나도록 설계되었기 때문이다.

가령 부동산 정책에서 문재인 정부의 집값 상승을 비난하긴 쉽다. 지금까지의 다주택자 규제 방법으로는 집값을 잡을 수 없고 해결 방안으로 규제를 풀고 공급을 늘리겠다는 신호를 시장에 보내겠다고 말하는 것까지도 어렵진 않다. 하지만 “규제 없이 공급만 늘리면 무주택자가 1주택 소유자가 되기보단 2주택 소유자가 3주택 소유자 될 확률이 높지 않으냐”(이진우)는 구체적 질문에 대해 “규제해서 결국 집값만 오르지 않았느냐. 잘못된 전제다. 어차피 집값이 급격히 오르지 않으면 굳이 젊은 사람들이 거액으로 집을 사지 않는다. 그러니 정부는 집값이 급격히 오르지 않을 거란 신호를 시장에 보내면 된다”(윤석열)고 답하면 답변 대신 같은 말만 반복 중이라는 걸 쉽게 알아챌 수 있다. 거기서 멈추지 않고 “공급 규제를 풀어 재건축도 늘어나면 재건축 아파트를 중심으로 집값이 오르지 않느냐”(이진우)는 질문에 “그 지역은 그럴 수 있지만 다른 지역은 상대적으로 떨어질 것”(윤석열)이라고 희망사항을 말하면 그동안 서울 집값 때문에 서울을 떠난 이들의 유입으로 수도권 외곽 집값까지 오른 걸 뻔히 아는 대중들로선 겁이 덜컥 날 법하다. ‘삼프로TV’가 함정 질문을 던졌다는 뜻이 아니다.

공격적이지 않되 논리적으로 미흡한 부분을 파고드는 구체적 질문이 점층적으로 반복될수록 준비가 부족한 인터뷰이는 같은 말만 반복하거나 아까 했던 말과 논리적으로 상충하는 말을 하게 된다. 그리고 정확히 대중이 언론에 바란 검증이 이런 것이었다.

지난 12월25일 ‘삼프로TV’는 현재 가장 유력한 두 대선 후보인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후보, 윤석열 국민의힘 후보와 각각 진행한 경제 정책 인터뷰를 공개했고, 현재(12월28일 기준) 이재명 후보의 영상은 조회 수 274만회, 윤석열 후보 영상은 175만회를 기록했다. 삼프로TV 화면 캡처

지난 12월25일 ‘삼프로TV’는 현재 가장 유력한 두 대선 후보인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후보, 윤석열 국민의힘 후보와 각각 진행한 경제 정책 인터뷰를 공개했고, 현재(12월28일 기준) 이재명 후보의 영상은 조회 수 274만회, 윤석열 후보 영상은 175만회를 기록했다. 삼프로TV 화면 캡처

‘삼프로TV’에선 정책 하나만 다
질문·답변 후 재질문·답변 ‘집요’
후보 역량 선명해져 조회 수 열광

사실 이번 ‘삼프로TV’ 대선 후보 특집의 형식과 방법론은 단순명료하다. 한 명의 후보만 불러 경제 정책 하나에만 집중해 완성본 기준 1시간30분 동안 질문하고 답변에 대해 다시 질문하고 그 답변에 다시 질문하는 방식으로 후보가 하는 말들의 내적 정합성을 검증하는 것이다. 시간과 주제의 차이는 있지만 2017년 대선에선 JTBC <뉴스룸>에서 손석희가 했던 일이다. 당시 손석희의 시그니처 중 하나는 “똑같은 질문을 계속 드리게 되는데요”다. 답변이 이해가 안 되면 의미와 의도를 재차 질문하는 정공법 인터뷰. 5년 전 손석희가 했던 걸 현재 유튜브 ‘삼프로TV’가 한다는 건 어떤 의미일까. 유튜브라는 플랫폼의 대중성과 해당 채널 170만 구독자의 영향력에도 불구하고 단순히 레거시 미디어에 대한 뉴 미디어의 승리라고 보긴 어렵다. 그보단 기존 매체들이 충족하지 못하던 저널리즘의 본령을 유력 유튜브 채널에서 꽤 잘 구현했다는 게 진실에 가깝다. 윤석열의 실언들이 그대로 헤드라인이 되어 파편적으로 소개돼도 해당 기사의 목적이 그러하듯 자극적 소비에서 끝날 뿐이다. 중요한 건 파편적이고 자극적인 말이 아닌, 말과 말 사이를 잇는 유기적 논리다. 그걸 파헤치고 검증하지 않는 막말의 소개와 소비는 정치와 투표에 대한 환멸로 이어질 뿐이다. 자칭 뉴 미디어도 마찬가지다. 팟캐스트 ‘나는 꼼수다’의 성공 이후 선명한 정파성을 노골적으로 드러내는 수많은 유튜브 채널이 등장해 극렬 정치 팬덤에 기생하며 조회 수를 유지해왔지만 바로 그 이유로 일말의 확장성 없이 자기들끼리 확증편향만 강화해왔다. ‘삼프로TV’의 이번 영상이 영향력을 발휘한 건 정확히 그 대척점에 있었기 때문이다.

‘삼프로TV가 나라를 구했다’는 말을 아전인수 격으로 해석해선 안 되는 건 그래서다. 2017년 정권이 바뀐 뒤, 방송사들이 뉴 미디어 시대에 편승한답시고 한 일은 김어준을 중심으로 SBS <김어준의 블랙하우스>를 만들거나 역시 ‘나는 꼼수다’ 멤버였던 주진우 기자를 섭외해 MBC <스트레이트> MC를 맡기는 거였다. 전자는 파탄에 이르렀고, 후자의 결합은 썩 성공적이지 못했다.

야당 후보 ‘경제 유튜브가 더 공정’
지상파는 ‘토론 불응’ 이유 찾을 때

윤석열의 TV토론 불응은 비판해 마땅하지만, 야당 후보가 지상파보다 경제 전문 유튜브 채널이 더 공정하다고 생각해 출연하는 것에 지상파의 책임도 분명 존재한다. 언론의 본령에 대한 반성 없이 뉴 미디어의 재미와 연성화된 형식을 배우자는 소리나 한다면 결코 지상파가 나라를 구했다는 얘기는 나올 수 없다.

어쩌다보니 반사이익을 누린 이재명 후보와 그 지지자들도 마찬가지다. 이재명 극렬 지지 유튜브 채널인 ‘열린공감TV’는 연일 민주당 버전 ‘가로세로연구소’ 수준의 윤석열 후보 부인에 대한 자극적 폭로와 마타도어만 내놓는 중이다. 지지자들의 자위용으로는 좋겠지만 다수 유권자의 피로와 환멸은 커진다. 이재명 본인은 어떤가. ‘삼프로TV’ 출연으로 20대 남성 지지율이 올라가자 그들의 입맛에 맞추겠답시고 정말로 뉴 미디어로서 새로운 진보 의제 형성을 위해 애써온 ‘닷페이스’와 ‘씨리얼’ 출연을 취소하거나 연기했다. 혐오 정서가 강한 남초 커뮤니티 ‘에펨코리아’에 전향적 태도를 보이고 ‘디씨인사이드’ 눈치나 보던 김남국 의원이 주도한 모양새다.

칼럼니스트 위근우

칼럼니스트 위근우

‘삼프로TV가 나라를 구했다’는 말은 그래서 다시 독해될 필요가 있다. 상당히 의미 있는 현상이 벌어졌을 때 그 의미를 온전히 이해하는 것도 시대를 읽는 역량이다. 누가 시대를 읽지 못하는지, 누가 근시안적 기회주의자인지, 누가 불편한 질문을 회피하는지, 이제 더 잘 드러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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